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땅을 접어서 달리며, 심지어는 구름을 타고 오르는 ‘신묘한’ 전법을 쓰는 ‘백두혈통’이 북녘에 있다고 한다.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그쪽에서는 그것이 진실로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들린다. 그 누구도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지 않아서다. 이 정도 수사에 넘어갈 만큼 우리 국민이 박약하지도 않거니와, 세대 전반에 걸친 민주주의의 경험이 개인에 대한 터무니 없는 우상화를 있는 힘껏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은 유머의 일종으로 활용된다. 예컨대 북한곡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교회 세습과 횡령을 일삼는 장로는 ‘장로님 에쿠스 타신다’로, 박근혜정부 시절 추진된 국정교과서 논란은 ‘대통령 교과서 쓰신다’로 비꼬는 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이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와 달리, 국가는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들이 반세기 동안 설파해온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것인지 몰라도, 국민의 ‘저력’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지난달 경찰은 김일성의 항일투쟁기를 담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한 출판
자격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실패의 기회’ 평범한 청년에게도 ‘패자부활전’을 제공하라 대구FC가 9경기 무패행진(6월 2일 기준)을 달리고 있다. 2002년 창단 이래 1부 리그 최고 성적을 거둘 기세다. 2018년 FA컵 우승 이후 대구FC에 대구시 예산 지원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시민들은 문을 연 축구전용구장과 좋은 성적에 열광했고, ‘우리 구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대구FC는 애물단지였다. 대구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지원금이 많다’, ‘지속된 적자에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질타를 발견할 수 있다. 2013년 구단주였던 김범일 시장의 구단 운영 개입으로 단장이 사표를 던진 일도 있었다. 2014년 ‘축빠’로 알려진 권영진 시장 취임 이후 조광래 단장 체제가 들어섰다. 성적은 상승했고, 예산도 늘었다. 2017~18년 대구시 지원금은 69억 원이었으나, 2019년 약 96억 원, 2020년 91억 원이었다. 올해 본 예산은 70억 원으로 줄었으나,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고 추경 예산 가능성을 생각하면 적은 액수는 아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후보 바람도 거세다. 이준석 후보는 1985년생, 우리 나이로 37이다.
“우리학교에 캠퍼스가 몇 개지?” 문득 떠오른 이 질문이 학과 동기들과의 소소한 토론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우선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성서캠퍼스가 있고, 과거에 본캠이었지만 현재는 미술대학만 남아있는 대명캠퍼스가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밖에 다른 캠퍼스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학교는 성서와 대명캠퍼스 외에도 세 곳의 캠퍼스가 더 있다. 대구동산병원이 위치한 동산캠퍼스, 달성군 유가읍에 터잡은 달성캠퍼스, 성서의 1.5배 규모에 이르는 칠곡캠퍼스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동산캠퍼스를 제외하면 부지만 확보된 상태고,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확정된 것도 아닌 탓에 이들 캠퍼스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때 성서캠퍼스도 허허벌판이던 시절이 있었다. ’98년 5월 18일자 <계명대신문>은 “81년부터 계속되는 이사,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기사를 통해 성서캠퍼스 이전 현황을 살핀 바 있다. 성서 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지난 1983년 1학기. 이전 초기 성서에 자리잡은 단과대학은 이공대(현재의 자연대)와 문과대학, 외국어대학(현재의 인문국제학대학)으로 총 세 곳이었다, 문과
삶은 우연의 연속 속에 존재하는가. 그 우연이 과연 진정한 우연일까. 혹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아닐까.문득 이윤기의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뱃놀이’라는 작품으로, 남녀의 어긋난 만남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 만남은 과연 우연인가 아님 필연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뱃놀이’의 이야기는 이렇다. 꿈에 그리던 첫사랑인 연지를 잊지 못해 아직 노총각으로 있던 그에게 그녀가 이혼녀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권하며 자신과 결혼해 주기를 원한다. 그 사랑의 지고지순함에 결국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늦여름 휴일 오후의 첫나들이, 옛 기억의 연지호에 찾아가 한가롭게 뱃놀이를 하는데 옆에 있던 배에 젊은 청년이 물에 빠진다. 이를 본 그는 청년을 구하려 물에 뛰어들고 그 순간 그에게 너무도 소중한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이 짧은 이야기에 그가 연이어 되뇌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란 말은 이들의 만남에 우여곡절을 표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말은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매우 불길한 징조로 작용한다. 그와 그녀의 만남은 잠시일 뿐이며 곧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과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 얼마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
해묵은 여성징병론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시작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4월 19일에 출간한 저서에서 “지원 자원을 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되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 병역제도인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하되, 모든 성별이 의무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도록 한다면 ‘불필요한’ 성차별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성징병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지금 수준의 병력을 현행 징병제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25년을 기점으로 병력 자원이 복무필요인원보다 줄어드는 ‘미스매칭’이 발생한다. 병력 50만 명 규모에 18개월 복무를 가정하면 2025년에는 예상 징집인원이 복무필요인원보다 8천 명 부족해지고, 2040년부터는 입영 대상자 숫자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다. ‘50만 대군’을 유지하려면 ‘복무기간 연장’ 혹은 ‘여성징병’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복무환경이 과거보다 나
이재용 ‘통 큰 기부’에 떠오르는 사면론 죄도, 세금도 법대로 하면 그만 대구시립미술관에 대구·경북에 연고가 있는 화가 8명의 작품 21점이 들어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1조 원에 이르는 소장품을 기증한 덕분이다. 대구미술관과 시민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기증과 함께 다수 언론은 ‘통 큰 기부’라며 칭송했고,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이 나왔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미술품을 기증한다고 상속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1조 원에 판매하더라도 절반은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산이 워낙 막대해 1조 원을 줄인다고 세율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왜 기증을 했을까. 이미 성과를 이룬 것 같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지난 4월 26일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여론조사업체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4월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에게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된다'는 응답이 69.4%, '사면하면 안된다' 23.2%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1조 원을 기증한 재
세상이 변했다. 청명한 하늘, 푸른 나무와 꽃들은 그대로지만 액자 속의 사진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건물들과 완벽한 조경에는 무언가 빠진 것 같다. 사람들의 눈만 꿈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스크 속에 가려진 그들의 표정이 그립다. 표정이 사라진 시대. 건조해진 일상은 마음을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정신마저 뿌옇게 만들었다. 닫히고 부정돼버린 시대에 서서히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흑백 필름이 씌워진 시대와 더불어 지난날의 실패들은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추진력이 상실돼버렸기에 나는 한동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지속되던 답답한 현실과 무력감은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고 하늘은 더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보내기를 한참, 우울함과 분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잠시 멈춰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랜 시간 멈춰있어 계속되는 무기력함에 점점 일상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예전만큼 무겁
“절반 이상의 빈 좌석엔 가방이 자리를 지키거나 책이 홀로 공부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가) 빈 좌석에 앉아 있으면 오전 9시를 넘어 심하면 11시 가량되어 좌석권을 내보이며 당연한 권리인 양 눈짓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어제의 열람실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35년 전, 그러니까 1986년 일이다. 시험 기간만 되면 만석이 되는 도서관에서 빈자리를 찾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986년 4월 22일자 <계명대학보>에 실린 ‘작은 질서를 위한 나의 제언’이라는 기고문은 당시의 열람실 이용 실태와 이제는 볼 수 없는 생경한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글은 개강 후 두 달간 분주하게 흘러간 시간을 돌아보며 도서관 열람실의 이용 실태를 지적한다. 글쓴이 양진흥(경제학·3) 씨는 취업난으로 인한 학생들의 불안감에서 야기된 불필요한 경쟁이 “덮어두기엔 고통스럽고 밝히기엔 민망한” 열람실 이용 실태와 맞닿아있다고 말했다. 당시 열람실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설로 인해 학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에 학교는 학생들이 열람실을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좌석권’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누군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무너지고 무엇으로 일어서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어떤 답변을 할지 생각해봤다. 나는 그 답이 ‘자존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는 원인은 우울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란 예상과 달리, 자존감이 떨어져서인 경우가 잦다. 내가 운영하는 상담센터도 예외는 아니라서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이 자주 방문한다.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존감 테스트를 해보면 내담자들 거의 다 낮은 점수를 보인다. 잠시 자존감에 대해 살펴보자.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의 외적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자존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며 사랑하는 마음이며,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이기도 하다. 자존감을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 성과를 내지 못하였더라도 내일은 해낼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태도가 중요하다. 원하는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줄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자존감은 스스로의 존엄성이 타인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