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정해걸 국회의원입니다. 우리 대학교 신문인 계명대신문이 1000호를 발간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모든 계명대인과 함께 축하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역사를 가지는 국내 유수의 대학신문에서도 지령 1000호 달성은 드문 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학보의 시작은 일종의 통신문이었다는 데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대학의 주요 소식과 학생들의 사건사고를 교우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구였습니다. 학보의 이러한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현대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학보에 대한 요구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전달이 가능해진 지금 학사공고와 학교의 소식을 신속하게 전달해야 하는 기능은 과거만큼 절박한 것이 아닙니다.이제 학보도 학사공고의 신속·정확한 전달보다는 시대 변화와 함께 변화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학내현안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방향제시 등은 실시간으로 정보전달이 이루어지는 온라인상의 매체가 쉽게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신문이 담아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독자들의 수요 변화에 정확히 대응해 나가
먼저, 재경 3만여 동문을 대신하여 계명신문사의 지령 10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또한 1957년 5월 “계대학보”로 창간, 반세기의 긴 세월속에 우리 계명인의 대소사를 역사로 남기는 일에 충실히 해온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재경 계명 동문회는 대구의 총동문회와 더불어 계명동산을 나온 10만여 계명인과 함께 항상 모교의 발전과 동문 상호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고 있으며, 계명인의 긍지와 모교가 “세계속에 계명”이 되기를 기원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끝으로, 지령 2000호, 5000호로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계명 신문사 가족의 노고에 거듭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지령 1000호의 “계명신문”을 축하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의과대학 79학번 조문환입니다. 몹시도 무더웠던 지난 8월,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들이 온 국민을 하나로 묶고 기쁨을 선사했듯 계명대신문 지령 1000호 발행은 계명대학의 발전과 영속성을 확인시켜 주는 또 하나의 반증이기에 계명 동문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학창시절 계명대신문은 학교·동문들에 대한 이야기와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이었고 입학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보았던 신문 활자들이 살아 움직이듯 눈에 아른거리며 때로는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이정표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우리 계명대학교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학교 구성원의 소통의 매체로서 대학신문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회 각처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을 연결하고 학교와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나아가 계명대학교의 발전상과 비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소중한 기능을 계속 담당하길 희망합니다.계명대신문이 지금껏 해왔듯 이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계명대와 그 구성원들 또한 사회에서 충분히 존경받고 유익한 일원으로서 빛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 의심치 않으며
계명대신문 지령 1000호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셨던 계명대신문 가족들께 1000송이 장미꽃을 마음에 담아 드립니다.재학시절에 계명대신문(그 당시 ‘계명대학보’)이 발간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계명대신문이 캠퍼스의 라일락 향기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던 감상어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거나 현재와 비교할 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매우 적었던 환경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성장 세대인 독자들의 다양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는 신문사 가족들의 ‘사랑하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누구나 첫사랑을 할 때에는 늘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독자들을 사랑하고,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언론으로 거듭나기 바랍니다. 늘 ‘첫사랑의 마음’을 간직함으로써 인터넷 매체가 확산되는 환경에서 독자들이 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아가 변화하는 환경을 선도하는 언론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합니다.
계명대 신문사는 1957년 5월 26일 ‘계대학보’로 창간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학문적 창구는 물론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지면에 실어온 ‘소통의 장’으로 제 역할을 다해왔다. 이러한 신문사가 9월 1일 지령 1,000호를 발행하게 된 것은 기자들과 학생, 대학의 관심과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신문 발행 호수 1,000회,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수많은 변화의 모습을 겪어왔을 것이며 각각의 지면에는 계명인의 발자취와 당시의 시대정신을 표출하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방송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졸문을 보태고 있지만 재학 당시 ‘학보’를 받아보며 설레던 기억이 떠오른다. 더불어 지금은 대기업에 근무하는 당시 학보사 기자이던 친구와 함께 ‘학보사’ 앞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시대를 지우던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대학신문을 통해 학생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정보화 사회에 대처하고 사회와의 소통으로 시대정신을 발전시켜 왔다고 믿는다.빛나는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계명대 신문사가 대학의 다양한 문화와 정보, 여론을 아우르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국가를 이끄는 동량이 되기를 기대한다.
안녕하십니까? 달서구청장 곽 대 훈 입니다.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 길목에서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계명대신문 1000호 발간을 맞아 60만 달서구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숱한 난제 속에서 숨은 노력으로 열과 성을 쏟아 온 현장 취재진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명대 신문사는 지난해 창간 50주년을 맞이하고, 금년 9월 1일 1000호 발간의 기쁨을 맞이하는 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운데 비판과 감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여 학교는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특히 우리 달서구는 계명대학교와 1999년 5월 관학교류협약 체결에 이어 9월에는 지역사회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상호간 정보·문화 등의 교류협약을 체결하고 동산도서관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였으며, 2006년 9월에는 산·학·연·관 기술 정보 연계체계 구축을 위한 달서 FTI포럼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등 상호 교류활동을 적극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또한 오는 9월 20일 계명대학교· 계명 1% 사랑나누기와 달서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2008 달서 스마일링 누리복지 축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상호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30여 년 전 캠퍼스 벤치에 앉아 계명 학보를 읽곤 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학보가 어느덧 1000호 발행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계명 학보 1000호 발행’은 여러분을 비롯한 선후배들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 낸 자랑스런 계명의 역사입니다.지난 세월의 더께를 한 꺼풀 한 꺼풀 걷어내고 들여다봅니다. 제게도 낭만의 추억, 아름다운 청춘이 숨쉬던 젊음이 있었지요. 오십 줄이 넘은 제게 이제 젊음이란 낡은 골동품과 같은 빛바랜 기억에 불과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젊은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우리 모교의 이름은 계명(啓明), ‘빛을 열어가다’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열정과 비전을 갖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펼쳐가야 할 젊음의 주인공입니다. 오만이 아닌 용기, 편견이 아닌 관용, 거짓이 아닌 진실로 계명의, 그리고 대한민국 미래의 빛이 되어주십시오. 다시 한번 계명 학보의 1000호 발행을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계명신문 지령 1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1000의 얼굴, 1000냥 빚, 성경에는 솔로몬이 기브온에 있는 큰 사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번제물을 1000마리나 바친 적이 있다고 열왕기상에는 기록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1000마리 학을 접어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분명 1000이란 숫자는 의미 있는 숫자임에 틀림없다.1957년 계대학보란 이름으로 신문을 첫 발행한 후, 지금까지 1000호를 발행하면서 계명인의 대변자로서 올바른 계명문화 창달과 대학홍보의 전령사 역할을 한 계명대 신문이여 영원하리라.집 앞 텃밭에서 가을배추를 심다가 기자로부터 지령 1000호 발행에 즈음하여 축하의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배님 계명대학교 신문사 기자인데요” 졸업한지 30여 년 만에 모교인 친정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가는 “계명대학교” 연락을 받고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 1학년 때쯤 잠시 계대학보의 만화를 몇 장 그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던 밭일을 계속하며 30여 년전 대학생활을 떠올려 보았다.지금의 윌슨관이 되어버린 당시 예술관에서 밤늦도록 그림을 그리던 일
계명대 신문 “1000호”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저는 지금도 하루 일과를 신문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도 항상 신문으로 하고 있습니다.관심분야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도 일상의 크나큰 즐거움입니다.학생시절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전해준 계명대 신문과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앞으로도 변함없는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계명대신문 지령 1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계명대신문은 지령 1000호의 발행에 이르기까지 계명대학교의 역동성과 팽창을 함축하는 첨병으로서, 아픔과 성장을 함께 해 온 계명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동시에 장래 계명대학교의 성장동력에 한 주축이 될 것이라는 점 의심하지 않으면서, 몇 가지 당부로 축사를 대신할까 합니다.첫째, 대학내 존재하는 다양하고도 상이한 의견들이 굴절 없이 그대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계명대신문은 계명대학교의 사실상 유일한 언론창구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독점적 지배구조는 자칫 편집자의 자의가 개입되어 계명대학교를 동화시키고 통합시키는 데 있어서 왜곡된 방향으로 유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둘째, 신문의 편집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절제미입니다.누구든 그 행동에 있어서 무한 자유로울 수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계명대학신문 역시 언론 매체의 하나이며, 헌법적 한계인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계명대학교의 통합과 발전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편집되어서는 아니되며,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절제미가 조화된 결정체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셋째, 학문연구의 보조자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대학
작년에 창간 50주년의 경사를 치렀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올해엔 1000호를 돌파하게 되는 더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겹경사를 맞이한 계명대 신문사를 이끌고 있는, 또 이끌어온 여러 선배, 동료 그리고 후배님들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학창시절 기자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7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 학원 내 대학기자, 대학신문은 캠퍼스 내에서 여느 언론매체 못지않게 사랑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생기자들의 열정으로 찍어낸 잉크냄새 짙은 신문은 기성신문과는 다른 대학생들의 순수성, 창의성 등을 담고 있었기에 거슬리는 냄새가 아닌 신선한 향으로 다가왔고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간의 전통과 명맥을 더욱 튼실히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앞으로는 대학 소식을 전하는 대학신문에서 더 나아가 지역민들에게 대학에 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계명대와 관련한 소식들을 알릴 수 있는, 더불어 명문대 계명대학교의 진면목을 대외에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계명대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한번 읽고 접어 버리는 신문이 아니라 스크랩 해 보관하고 싶은 신문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다시 한번 계명대 신문 1000호
지령 1000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지령 1000호라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계명대신문사 제 50기 수습기자를 모집합니다.’란 플랜카드를 보고 수습기자 지원서를 제출했던 것이 벌써 3년 6개월 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지령 1000호 발행은 계명대언론사 통합뉴스포털 gokmu.com의 출범으로 조금 늦어졌습니다만, 지령 1000호 발행을 앞둔 수습기자였던 제가 편집국장으로 1000호를 발행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도 못했습니다.수습기자 면접날, 면접관으로 앉아계시던 선배님께서 가장 처음 꺼낸 말은 “50기는 축복받은 기수다.”였습니다. 계명대신문사의 반세기 역사를 고스란히 나타내는 기수일 뿐만 아니라 곧 있을 창간 50주년과 지령 1000호 발간을 앞둔 기수이기 때문이란 설명은 계명대신문사 수습기자로 지원한 것에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수습기자, 준기자, 정기자, 사회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의 자리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선배들의 꾸중에 섭섭하기도 했고, 내 기사를 보고 신문사에 지원했다는 후배의 얘기에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프로포즈에 난감했던 적도 있었고, 동기들과 밤새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