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초부터 한국 공영방송사들은 조직 지배구조에 대한 내부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영권에 대한 방송 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파업 등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형국이다. 1월말부터 시작된 MBC의 파업, 3월초 KBS의 동조파업, 그리고 YTN과 연합뉴스의 내부적 갈등은 모두 경영진 퇴진이나 사장 연임 반대와 관련되어 있다.
공익기관인 방송사 내부의 갈등은 곧바로 국민의 정보 이용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파업 후 MBC 뉴스데스크는 여당의 로고를 잘못 내보내거나 일기예보에서 3·1절을 개천절로 표기하는 자막사고를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문화방송의 간판오락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결방되고, 시청률 40%를 넘어서면서 국민 드라마로 불리는 ‘해를 품은 달’에 대한 방송차질도 우려되면서 국민의 시청권이 침해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파업의 궁극적 피해자는 대다수의 정보를 방송에 의존하는 국민인 셈 다.
방송노조원들은 집권 정당에 좌우되는 현 지배구조 시스템에서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위상을 제대로 정립할 수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대선 특보 출신을 KBS와 YTN 사장직에 임명하거나, 이른바 대통령의 멘토라는 인물에게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장직을 맡기면서 현재의 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이들 언론사 사장들이 정권의 입김 속에 임명된 뒤 객관적이고 민주적인 방송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소위 권력에 부담 주는 기사는 뉴스 편성에서 사라지거나 비판적인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인사 조치되면서 방송사 내에서 경영진에 대한 불신은 커져왔었다.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상파 방송 사장 선임에 대한 정치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S나 MBC 모두 사장 및 이사진 선임이 내부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집권 정당 위주로 선임되는 불공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선 없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될 수 없다는 시각에 대해 정치권은 권력으로부터 방송을 독립시키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사장선임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이른바 ‘방송사 임원 낙하산 금지법’으로 불리는 방송법·방통위법 개정안이 지난 20일 발의되었다.
개정안의 핵심은 △정당을 탈당하거나 대선후보 선거대책기구에서 활동한 뒤 3년이 지나지 않은 자 △정부·공공기관 임원 퇴임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의 KBS, 방송문화진흥회 최다출자 방송사업자(MBC)나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연합뉴스, YTN) 임원이 될 수 없게 한 것이다. 편파방송의 논란이 권력측근의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이다.
.KBS나 MBC 모두 선임권을 가진 이사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사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과반 이상 찬성’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강화하면 특정 정파가 지지하는 사람을 사장으로 밀어붙일 수 없으며, 여야 양측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한편, 여권의 방송, 정권의 방송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MBC 노동자들의 주장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PD수첩 관련 무죄판결이나 사장 선임 관련 초기 논란 시점보다 4월 선거에 앞서 파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정부출범 후 타 언론사의 사장선임과 관련해서는 침묵했던 전례도 있다. 그래서 이번 파업을 내부적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선거와 연계한 정치적 행동으로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는 시각도 있다. MBC 기자회가 뉴스제작을 거부하면서 편성한 15분짜리 <뉴스데스크>의 첫날 시청률은 평소보다도 낮았다. 시청률 조사기관에 따르면, 당일 방송3사의 전국기준 시청률은 MBC<뉴스데스크> 7.6%, KBS<뉴스9> 22.2%, SBS<8뉴스> 13.2%였다. 보도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탓하기에 앞서 그동안 오락적 기능을 강화해온 방송사의 역할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각 방송사에서 오락 장르가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보도의 불편부당성만을 탓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활동은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이익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준 흥미위주의 내용, 피상적 보도, 편파적이거나 왜곡된 내용 등은 공적기구로서의 미디어의 지위를 하락시킨 주요 요인이었다. 이로 인해 방송사는 언론의 제1사명인 권력 감시 기능을 상실한 ‘죽은 언론’이 됐다는 불명예를 얻었다. 따라서 방송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에 앞서 방송독립과 언론자유를 위해 자신들이 행한 그동안의 역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번 방송 사태는 방송 산업이 구조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생존 위기와도 관련되어 있다. 지난해 개국된 4개 종합편성 방송사업자의 출현은 기존 방송사들을 무한경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영적 측면이 보도나 편성보다 더 주목받는 현실 속에서 언론인이 갖게 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의 공익적 기능 약화를 불러왔다.결국 방송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대변할 경영진 선출에 대한 목소리를 표출해야만 했던 것이다.
쌍방향 매체의 출현과 더불어 참여와 표현의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대다수 언론사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언론사가 국민들의 편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노력은 공공적 도구인 언론의 사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방송사 언론인들은 그동안 엘리트 의식을 가진 특권층은 아니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언론사간 헤게모니 투쟁과 정치인이 되기 위한 주요 관문으로 언론활동을 행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공적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취재, 보도하고 이에 관한 논평을 시민들에게 서비스하는 방송의 저널리즘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크다. 언론의 공익적 활동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전제이기에, 국가권력과 사회구성원들은 언론을 존중해야 할 ‘객관적 가치질서’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사는 세상을 의미 있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저널리즘 기능 회복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도와 친밀감을 얻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사 양측이나 정부는 이번 방송사태의 해결점을 국민의 이익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MB의 MBC,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파업구호처럼 내부적 갈등이 자성과 숙의(deliberative) 단계를 거쳐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