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영화, 다큐 등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윤동주 열풍’이라 할 만하다. 윤동주는 분명 매혹적인 부분이 있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깔끔한 그의 시 자체가 매혹의 원천이다. 그런데 요즘 소위 일고 있는 ‘윤동주 현상’에 대해 윤동주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까. 어떤 원인이 있을까.
첫째, 윤동주가 우상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상이란 대상의 본질을 따라 실천하지 않고 맹종하는 것이다. 껍데기를 맹종한다. 우상은 주체와 거리가 있지만, 친구는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간다. 윤동주는 멀리 있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가는 친구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정교과서 시대에 친일 성향의 편수위원들이 자신들의 면죄부로서 윤동주를 이용했을 가망성이 보인다. 군부독재시대에 이순신이 애국의 화신으로 이용되었듯이, 윤동주는 애국주의 코스프레(Cosplay, 분장놀이)로 이용되었다. 윤동주와 이육사 정도만 교과서에 넣고 노천명, 서정주, 염상섭, 현진건 등 친일 시인 작품을 교과서에 채워 놓았다. 군부정치 정권이 이순신 동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정권을 합리화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어 자신의 치적을 인문학으로 미화하는 듯 했듯이, 거짓 세력이 윤동주 시를 우상화하고 면죄부를 받으려 한 부분이 있다. 부패한 정치가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읽을 때 괴기스러웠던 적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애국을 들먹이며, 자신도 자기를 성찰하는 깨끗한 사람이라며, 가장 부패한 자가 윤동주의 「서시」를 인용할 때 마음 아프다. 이들은 윤동주를 우상화하며 자신들의 부패를 감춘다.
일그러진 기독교에서도 그를 우상화해온 측면이 있다. 윤동주는 전체가 그렇지는 않지만 현재 형식화된 한국 교회의 틀에 갇히지 않는 사람이다. 윤동주는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처럼”(「십자가」1941.5) 살고 싶어 했다. 개신교는 윤동주를 ‘기독교 작가’라며 강조하고 있지만 윤동주는 그 틀에 갇혀 있지 않다. 지금 살아 있다면 윤동주는 큰 교단의 장로님이 되어 있을까. 그의 맑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종소리도 울리지 않”으며 예언자 정신을 잃은 몇몇 부패한 교회에는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면서 가지 않았을 것이다. 헌금 액수나 예배 참여 횟수를 신앙의 척도로 생각하는 초등학교 수준의 교회와 윤동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예수’ 그 본질을 따르려 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다만 행복한 예수의 길을 따르는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갈 가능성도 크다. 윤동주를 기독교에 가두는 것은, 예수를 시멘트 교회 건물에 가두는 것과 유사하다.
둘째, 상품화가 염려된다.
‘미키마우스 저작권’이라는 말이 있다. 도는 얘기지만, 미키마우스 이미지 저작권을 더욱 확보하려고 월트 디즈니사에서 작가 사후 50년이었던 저작권법을 20년을 늘여 70년으로 만들었다는 설이다. ‘저작권 보호 70년’에서 풀리는 책들은 자유롭게 저작료 내지 않고 출판할 수 있다. 사후 71년이 되는 윤동주 시집은 그래서 올해 봇물 터지듯 출판되었던 것이다.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을 위해 상품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물론 상품이 되었다고 모든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확히 잘 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판매되는 식품에 불량식품이 있지만, 야생 그대로 유통되는 좋은 먹거리도 있다. 내가 낸 윤동주 시에 관한 졸저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도 엄중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 <동주>는 디테일에서 틀린 정보들이 있지만 크게 보았을 때 아주 긍정적인 상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 이건 아니다 싶은 잘못된 윤동주 상품과 상품성을 겨냥한 뻔한 이벤트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사실 아직 완벽한 윤동주 시 정본이 없다. 윤동주가 죽기 전 시집을 구상했을 때 묶었던 원고는 17편이었다. 여기에 강처중 등이 보관한 유고시 등을 합쳐 1948년에 나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33편의 시가 실렸다. 그런데 이 판본은 윤동주를 알리고자 정병욱 등이 쉬운 말로 교정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윤동주가 만든 조어(造語)나 함경도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꾸면서 윤동주다운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이다.
최근 나온 어떤 시집은 윤동주 시를 가나다순으로 편집해서 낸 책도 있다. 그런데 사실 윤동주는 시 말미에 항상 날짜를 기록했기에 연대순으로 읽는 것이 좋다. 윤동주 시는 시 말미에 있는 집필일시 자체가 많은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가령 「참회록」에는 끝에 ‘1942년 1월 24일’이라고 써 있다. 윤동주는 ‘1월 29일’에 창씨개명했으니 5일 전에 쓴 시다. 곧 시를 쓴 연대 자체가 시를 쓴 배경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윤동주 시집에는 연대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셋째, 윤동주를 왜곡하는 현상이다.
윤동주 삶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끝나지 않고 실천과 이어져 있다. 그의 시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윤동주의 시를 자기성찰의 시라고만 묘사한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 여기까지 얘기해도 자기 성찰 부분만 싣는다.
윤동주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자기 성찰에 머물면 안 된다. 친구들은 윤동주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줌마가 있으면 뒤에서 밀어주고, 앉아서 쉬는 농부가 있으면 곁에서 대화하곤 했다고 증언했다.
윤동주 시를 생각할 때 ‘큰 고요’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의 시는 자기성찰이라는 ‘큰 고요’를 출발하여 이웃 ‘곁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다. 시 「병원」을 보면 환자가 떠난 빈 침상에 곁으로 가서 누워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 ‘병원’, 1940.12. <처럼> 281쪽)
자기 성찰과 실천의 일치를 말한다. ‘큰 고요’(자기 성찰)를 품고 ‘곁으로’(실천) 가야 한다. ‘자기성찰=실천’의 구도가 윤동주에게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큰 고요만 강조하면 윤동주의 뜻이 왜곡되기 쉽다. 자기 성찰 또한 중요하지만 실천이 빠진 성찰은 공허할 뿐이다.
윤동주를 바로 읽는 사람
최근 ‘윤동주 현상’이 우려되는 점을 써보았다. 윤동주의 본질이 아니라 그릇된 허울이 우상이 되고,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우려할만하다.
윤동주를 바르게 읽는 사람은 단지 시집을 사고 영화를 보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자기 동일화가 있어야 시를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 느끼는 것만큼 느끼지 못하면 절대 시를 이해할 수 없다. 윤동주를 읽고 성찰했다면 소외당한 사람들을 돕는 등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동주의 정신이다. 윤동주 신앙의 핵심은 「팔복」에 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윤동주, 「팔복(八福) - 마태복음 5장 3~12」 전문
이제까지 연구자들은 「팔복」을 풍자시, 절망적인 시로 봤다. 그러나 이 시를 썼을 때 전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다른 시를 함께 보아야 한다. 1940년 12월, 「팔복」, 「병원」, 「위로」 세 편의 시를 썼다. 긴 침묵을 깨고 쓴 시다.
윤동주는 슬픔 ‘곁으로’ 가는 것이 복이 있다 말한다. 세월호 ‘곁에’ 가서 슬퍼하면 복이 있다는 말이다. 한병철의 <피로 사회>를 보면 남과 피로를 나눌 때 회춘(回春)한다는 말이 나온다. 피터 한트케(P. Hantke)는 ‘피로에 대한 시론’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면 그 피로는 우리의 삶에 힘을 주는 ‘우리-피로’로 바뀐다고 했다. 슬픔과 함께 나누면 그것은 ‘우리-피로’를 거쳐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263쪽).
윤동주의 행복론은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헤겔이 말한 것과 차이가 있다. 오랜 시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윤동주 시집에 공감한다면, 세월호 현장에 찾아가고, 늙은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한 통 드리고, 독거노인께 반찬을 갖다 주거나 아프리카에 돈을 보낼 수도 있다. 윤동주를 읽고 아무 실천이 없다면, 윤동주를 단지 유행의 한 가지로 ‘소비’하고 즐겼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