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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자 개그가 각광받는 시대적 의미와 메시지

“기성세대들이 만족해 온 혐오의 정치와 사회는 대학생들에 의해 단절돼야”

2012년 한국 대중문화의 대세는 ‘시사풍자 개그’다. 시사풍자 코드는 남녀노소, 계층에 상관없이 대화의 물꼬를 트게 만드는 수다 포인트가 되었다. 시사풍자 개그가 이처럼 대중의 무한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며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정치 풍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정권을 향해 강펀치를 날리며 “쫄지마, 씨바”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같은 유행어로 신드롬을 이끌어냈다. 일부 대중은 욕설 섞인 이들의 직설적 선동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현 정권에 반감을 지닌 젊은 세대들의 적극적 호응으로 이상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2012년, 이 같은 시사풍자 개그의 각광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정권 교체시기에 시사풍자 코미디가 각광받았던 사례는 많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정치와 시사는 가장 민감한 소재다. 통제와 감시가 극에 달했던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이나 모든 정권의 초기에는 그 누구도 감히 정치인과 사회적 부조리를 풍자의 소재로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넥타이 부대까지 등장해 정권교체와 민주화를 외쳤던 80년대처럼 권력의 위압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던 시기나 정권의 레임덕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시사풍자 프로그램들은 기지개를 켠다. 정치의 권위가 실종되는 분위기가 역력한 2012년에도 시사풍자 개그는 안방 브라운관을 가볍게 점령했다.

자유로운 표현 자체가 억압된 시기에 정치나 시사문제를 개그의 소재로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강력한 요즘, 정치권은 풍자개그를 비난하거나 개그맨에게 제동을 걸라치면 거센 대중적 저항을 각오를 해야 된다. 실제로 지난 해 무소속 강용석의원이 개그맨 최효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후 대중의 역반응에 휘말려 고소를 취하했고 고소당한 개그맨은 스타로 돌변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한마디로 요즘은 개그맨이 화제의 중심이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국회의원들도 개그맨과 맞장을 떠봐야 승산이 없다. 개그의 소재를 제공할 뿐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지닌 대중이 개그맨들의 우스갯소리와 풍자에 통쾌감을 느끼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는 개그맨 개인의 능력과 소재가 기막히게 접목된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장르가 혼재하는 코미디 안에는 ‘풍자’라는 게 존재한다. 풍자라는 단어 안에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적인 것을 빗대어 비웃다’는 뜻이 담긴 만큼 그 대상은 다양하다. 정치판과 선거과정의 상황변화와 더불어 예능프로그램들의 표현 자유가 어느 지점까지 금기의 벽을 허물 것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들과 예능인들이 얼마나 ‘쫄지 않고’ 대중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 줄 것인가 여부는 웃으며 맞이하는 정치와 선거의 조건임에 자명하다. 철옹성 같았던 금기의 문은 다시 활짝 열렸다. 지난 1월 2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게스트로 출연한 강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 위원장은 전주에 출연한 영화배우 최지우의 방송분보다 시청률을 6.3%나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박근혜 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까지 출연했다.

개그(GAG)라는 영어는 익살맞은 대사, 개그맨은 재담꾼을 의미한다. 개그의 원형질인 ‘만담(漫談)’이라는 명칭을 일제강점기에 처음 사용한 신불출은 이 방면의 선구자다. 그의 풍자와 해학은 나라 잃은 백성의 울분을 달래주었다. 일제에 노골적으로 저항한 그는 불온한 인물로 찍혀 툭하면 순사들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를 피할 수 없자 이름을 ‘강원야원(江原野原)’이라 지었다. 일본어 발음은 ‘에하라 노하라’. 즉 ‘맘대로 될 대로 되라’는 뜻이다. ‘불출(不出)’로 개명한 속뜻도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일본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세상에 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지난 1992년 대선 때도 지상파 TV 코미디프로그램들은 정치풍자 코미디로 뜨거웠다. KBS 2TV <웃음 한마당>의 ‘가는클럽 토론회’코너는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토론회’를 모방해 대선주자 초청토론회로 코믹하게 구성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화’코너는 개그맨 최병서가 다중촬영으로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후보의 대담형식으로 구성해 큰 인기를 끌었다.

SBS <코미디전망대>의 ‘코미디모의국회’ 코너도 국회의 한 전문위원회를 설정해 회의진행과정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풍자했다.

1980년대 이후 정치 풍자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지만 제약도 만만치 않았다. 당대의 코미디언들은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표현수위가 높은 풍자개그가 방송된 날은 어김없이 국가안전기획부와 여당, 야당 할 것없이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직접 방송국을 찾아와 대본을 미리 보자고 해 방송국 윗선에서 자체수정까지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사풍자 개그는 80년대 선배들이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 그 토양을 닦아놓은 셈이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시사풍자를 선보인 것은 이명박 정권 2년 차인 지난 2009년이다. 그리고 2011년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유치원’은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와 청년실업, 전세대란, 외모지상주의 등을 두루 풍자해 파급력을 구현했다. 코너를 주도하고 있는 개그맨 최효종은 국회의원 되는 법, 선생님 되는 법, 경찰관 되는 법을 쉽게 알려주지만 모순적인 현실을 꼬집으며 시사풍자 개그 열풍의 도화선을 점화했다. 2012년 최효종은 새해 첫날부터 용감하게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방관 질책을 소재로 삼았다. 종편 MBN의 <개그공화국>은 점입가경이다. ‘셰프를 꿈꾸며’는 식당을 배경으로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 안철수 교수 등을 요리사로 등장시켜 현재 정치 사건과 상황을 정면으로 다뤘다.

영화감독 장진이 뉴스형식으로 진행하는 케이블 tvN의 ‘SNL(Saturday Night Live) 코리아’는 표현수위가 더 높다. 하지만 정치현실을 소재로 삼는다 해서 무조건 대중의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조문단이 이슈다. 정부에서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마십시오”등 직설화법에 가까운 장진감독의 발언은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MBC ‘나는 하수다’에 대해서도 “첫회는 신선했는데 이후 너무 직설적으로 풍자하려고 하면서 재미가 덜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처럼 풍자개그에서 직설화법은 오히려 불편함을 준다.

풍자 개그는 말 그대로 현실을 비꼬고 뒤틀었을 때 웃음을 주며, 공감대와 교훈이 녹아있을 때 진가가 발휘되는 법이다. 이는 시사개그를 하는 이들에게도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사풍자 개그 프로그램들. 이제는 인기나 시청률만을 의식한 직설적 풍자가 아닌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카타르시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 그리고 어느 한쪽만을 대변하는 편향된 시각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공평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안겨준 민요와 만담에는 따끔한 현실풍자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상처주지 않는 해학과 교훈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요즘 개그맨의 사명은 용감무쌍하게 금단의 성역에 침투해 힘 있는 자들을 저잣거리로 끌어내 까발리는 일이 아닐까! 다들 입이 근질근질하고 속이 터지는 이때 누군가가 나서줘야 대중은 누적된 심신의 피로와 억압된 욕구를 배설하고 다시 고단한 일터로 나갈 힘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신라시대 북두장이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혼자 소리쳤다. 현대인들은 구린 현실정치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즐긴다. 마치 조선시대 노비들이 양반들을 풍자하면서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한번 크게 웃으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는 것, 그것이 2012년판 풍자 시사의 미학이다.

대학생들도 시사풍자 개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들이 반복해온 혐오의 정치와 사회는 이제 그대들에 의해 단절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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