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문화누리카드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온라인으로 통합카드를 신청받던 날부터 시작된 혼란과 시행 후 두 달여가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사업은 줄기차게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전까지 일정한 성과를 확인한 바 있는 세 개의 바우처 사업(여행바우처, 문화바우처, 스포츠바우처)을 하나로 묶자는 통합문화이용권은, 원래는 철저히 이용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발상이었다.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세 영역이 각자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이용자들 입장에선 불편이 만만찮았다. 카드를 세 개씩이나 만들어야 했고, 그것을 만들 때마다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문화소외계층임을 입증하는 서류들을 작성·제출하고 인정을 받아야 했으며, 그렇게 어렵게 만들고 나서는 각 카드마다 한도가 너무 적어 실제 효용가치는 낮았다. 그러다보니 예산이 남아돌기까지 했고 심지어 바우처 무용론까지 제기되었던 것이다.
바우처(voucher)의 사전적 의미는 증서 또는 상품권으로 도서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처럼 구입할 수 있는 상품에 일정한 제한이 있는 유가증권을 가리킨다. 백화점이나 오픈 마켓 등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사은 쿠폰 등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쿠폰은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 제공되는 유가증권으로 바우처 제도의 한 사례이다. 원래는 마케팅에서 특정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고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였지만 현재는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바우처 제도는, 상품을 판매하는 공급자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가 정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막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미시경제학의 기본적인 이론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 수혜자의 효용이 가장 극대화되는 경우는 현금을 제공하는 경우이지만, 이때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는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정부보조 대상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럴 때 현금 대신에 바우처를 공급하게 되면 원하는 소비가 강제되어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도 할인이 가능해서 현금을 제공했을 때보다 바우처의 효용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상품공급자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면서도 정부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바우처 제도는 잘못 운영하게 되면 수혜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거나 상품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한다거나, 액면가가 지나치게 낮은 바우처의 경우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거나 해서 실패를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초기의 문화바우처는 상품공급자인 공연기획사와 극단 등에게 지나친 할인을 요구했는데, 그 때문에 정부가 충분한 복지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가뜩이나 어려운 예술가들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주장까지도 쏟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워낙 적은 지원 금액 탓에 공연보기 자체를 포기한 문화소외계층들이 속출하였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이 때 싹튼 문화바우처에 대한 불신은 한동안 공연계에 앙금으로 남아있었다.
문화누리카드는 바우처 제도의 가능한 모든 문제들을 다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애초에 정부의 통합이용권사업이 구체화되어 발표되자 그 많던 기대의 목소리들이 한순간에 우려로 바뀌고 말았다. 실제로는 한도가 축소되었다는 지적에서부터, 선착순 신청이라는 행정 편의주의식 발상에 대한 지적, 온라인 결재 시스템의 통합 문제 등이 지적되면서 우려가 쏟아졌던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자 가족 구성원 중에 청소년들이 존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1가구당 1년에 활용할 수 있는 금액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 확인되었다. 문화바우처 5만 원, 여행바우처 10만 원, 스포츠관람 바우처 5만 원으로 세 개의 카드를 갖고 있을 경우에는 총 20만 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세 카드 통합이용권의 한도는 총액 10만 원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물론 카드 신청 세대에 청소년이 있다면 연간 5만 원 한도의 카드를 최대 5명까지도 발급받을 수 있다지만, 그럴 경우 다시 카드를 두 장, 세 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불편이 뒤따른다.
더욱이 청소년 카드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데, 공인인증서가 없이는 인터넷 결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오프라인 현장에서는 청소년 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나, 온라인상에선 본인 인증의 수단으로 공인인증서만을 요구한다. 미성년 자녀의 경우에는 공인인증서가 없기 때문에 부모와 은행을 방문하여 통장을 개설한 후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농협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사용등록을 마친 뒤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자녀 이름으로 발급된 카드를(5만 원) 사용하기 위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도심이 아닌 외곽지역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콜택시나 저상버스를 타고 은행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공인인증서 발급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고작 5만원을 지원받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용권인데도 선착순으로 제한한다 하니, 카드 발급 당시에는 신청자가 폭주하여 서버가 다운되는 소란을 빚었다. 서버의 원활한 접속은 신청개시 후 거의 2주 가까이 지난 다음부터 가능해졌기에 주민센터에서 수기로 신청하는 사람도 줄을 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끝난 재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정된 서버를 시급히 구축하지 않으면 인기 높은 공연이나 여행 상품들이 있을 경우에 언제든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통합 예매 시스템이 없거나 수수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보장된 바우처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행 후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철도 이용은 불가능하며 고속버스도 사설 업체인 이지티켓 시스템을 운영 중인 터미널(서울 센트럴 터미널-호남선)은 이용불가, 전국 고속버스운송 사업조합 소속 터미널만 현장발권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저상버스가 없어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 사실상 여행바우처 제도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화관은 오프라인 이용 시에만(CGV) 2500원 할인이 되며, 인터넷 예매를 하면 현장에 가서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하고서야 할인권을 받는 일부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예매라는 편의를 문화누리카드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본인 동의 없이 문화누리카드가 사용되는 충격적인 사건도 생겼다 한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사는 주민 주 모씨는 문화누리카드를 받지도 못했는데 어머니 명의로 된 문화누리카드가 목포 영풍문고에서 사용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주 씨가 이 같은 상황을 의신면사무소에 문의했더니 “할머니들은 카드 사용을 못하시기에 면사무소에서 할머니들을 위해 물품을 구입했다”는 답변과 함께 다른 사람 명의의 문화누리카드를 주면서 “아무나 사용해도 되니 굳이 어머니 카드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초단체의 바우처 부정 편법 사용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대책은 간단하다. 해당 사업 전반에 대한 지도와 점검을 통해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드 사용을 잘 못하고, 인터넷도 낯설기만 한 어르신들까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업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얼른 풀고서 다시 처음 단추부터 꿰어야 한다. 잘못 꿰어진 단추가 저절로 제 자리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