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9만5천여명이 소속된 국내 최대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불법 로비를 통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장동익 회장은 자신이 지난달 말 강원도 의사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 3명에게 2백만원씩, 매달 6백만원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 보좌관 9명에게 거마비 집어주고 술먹이고 했다. 의료법 때문에 우리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고 발언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정기총회에서 회비의 쓰임새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장회장이 돈의 쓰임새를 꾸며댄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녹취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장회장의 발언이 너무나 구체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설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녹취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또 다른 의원도 법안과 관련해 의사 10명에게 1천만원을 후원금으로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법조계는 국회의원이 후원금을 합법절차에 따라 받았어도 자신의 직무인 법안을 만드는 대가였다면 대가성이 인정돼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공무원이 국민을 배신하고 이익단체의 뒷돈에 꼭두각시처럼 놀아났다면 이는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나, 로비 방식을 처벌할 수 있느냐 없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요한 의사결정이 과연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를 따져보는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의혹을 받은 마당에 국회나 정당이 조사를 하는 것으로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액수나 로비 행태를 고려할 때 이번에 드러난 로비실태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의사협회 뿐 아니라 다른 이익단체의 로비는 없었는지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로비로 통과된 관련법에 대해 재검증을 할 필요가 있으며 불법 로비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의료단체들이 의료 관련 법안이 다뤄질 때 의사의 권익과 국민의 건강권을 앞세워 집단행동을 벌인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뒤편에서 이런 거래를 했다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으레 그랬거니 하는 냉소적인 태도로 넘어간다면 이 같은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