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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신문

[축사-계명대신문사 퇴임기자] 계명대신문의 의제설정은 정당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창간 50주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러나 50주년이라는 햇수가 축하의 대상은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저절로 취득되는, 그야말로 기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동안 대학신문의 사명에 충실하였다면 이것은 보통 축하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문의 본질에 충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실례로 당장 우리는 국내 메이저 신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고 있는 중이다. 흔히 ‘조중동’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신문들은 국내 신문시장의 80% 가까이 점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더 이상 ‘신문에 났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실이나 진리로 여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기사가 무슨 신문에 실렸던가를 먼저 따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 신문사의 최근 행적을 뒤져본다. 재벌과의 결탁여부, 5공 6공 시절에 독재권력과의 왜곡된 관계, 더 멀리는 친일여부……나아가서는 반민족적 성향이 있나 없나. 이런 변수들은 그 신문이 주장하는 내용의 진위와 가치를 검증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신문시장의 80%를 점유함은 한 사회의 의제설정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이라는 메이저 신문사들의 이니셜 뭉치가 하나의 보통명사화로 전이되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은 순전히 ‘조중동’ 및 그 아류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들이 독점했던 의제설정권은 다양한 인터넷 언론들이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이나 신문이나 진실하지 못하면 말이나 기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문득 1974년도의 사건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17대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다.

개교기념특집호를 준비하고 있는 학보사에 날벼락 같은 주문이 떨어졌다.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개교기념특집화보로 게재하라는 학교당국의 지시가 주간교수로부터 전달되었다. 전국 유수의 대학들이 반정부 데모에 앞장서던 시절이었다. 독재자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대학생들과의 집단면담차 대학순회방문을 강행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본교를 방문하게 된 시점이 공교롭게도 개교기념특집호 발간일과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육여사의 본교방문을 종합대학교로의 승격을 이룰 기회라고 판단한 학교당국은 대학신문을 이용할 발상을 하게 되었고 이에 반발한 학보사 기자일동은 신문제작을 중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명색이 대학의 개교기념특집화보에 독재자 아내의 얼굴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학장실에 불려간 나는 학교발전의 당위성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하였고 나는 나대로 반정부투쟁 일색인 전국 대학가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본교 학생들의 자존심 문제를 거론하였다. 솔직히 육여사의 얼굴이 학보에 게재되는 날이면 본교 학생들의 ‘쪽’은 시궁창에 처박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청와대 쪽에서 대학신문에 게재할 영부인의 사진 제공을 거부하였는지 어쨌는지 문제는 의외로 쉽사리 일단락되었다. 석 달 뒤 육영수 여사는 8.15 식장에서 흉탄에 쓰러졌고 5년 뒤 박정희 대통령은 심복의 총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지금도 나는 가만히 돌이켜본다. 그때 개교기념특집호에 대통령부인의 사진을 화보로 게재하였다면 어찌되었을까? 창간50주년이라고 당당하게 자축할 기분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34년 전 일이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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