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미디어 환경은 하루가 달리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종이신문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신문이 귀하고 값진 이유는 활자가 발명된 15세기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쇄문화의 상징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알려주는 정보통 노릇은 물론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지식백과의 노릇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신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해가는 매체환경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신문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창간 50주년은 그런 뜻에서 지난 과거를 자랑하고 기뻐할 자격이 충분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맞게 될 50년을 위한 재정(repositioning)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일반적으로 보도와 교육과 오락과 광고의 기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광고와 오락기능이 60%를 넘게 되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의 보도기능은 35%, 그리고 겨우 5%가 교육기능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신문이 갖는 이런 형태의 구조가 대학신문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르치고 배우고 연구하고 봉사하는 대학의 기능이 대학신문의 기능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기능이 훨씬 더 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의 시대라고 일컫는 21세기에 다원 문화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교육입니다. 그동안 우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체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다른 것들에 대한 겸손한 수용이 없이는 갈등과 경쟁의 대립구도를 벗어나기 어렵고, 창의적 시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 질서의 존중이라고 하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도덕과 철학이 없어서 인간 세계가 황폐해 진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의 두뇌는 엄청나게 확장되었으나 손발의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게 낭패입니다. 고래의 멸종을 걱정하고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의 생태적 미래를 걱정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우리는 대학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여전히 우리 자신의 가래침과 담배연기로 오염시켜가고 있다는, 작지만 소중한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대학 신문이 사실 보도와 비판 이상으로 교육의 기능이 강화되기를 희망합니다. 대학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으로서 특수성을 확보하고 차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이 신문의 위력을 유지하려면 인터넷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먹음직스럽게 포장하고 맛있게 만들어 내야 합니다. 계명대학신문은 앞으로 50년을, 기독교적 창학 정신을 근본으로 하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끊임없이 다듬고 만들어가는 창조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