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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을 생각하며

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나는 독일 유학시절을 떠올린다. 독일에 대해 혹자는 유학시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와 정반대로 좋은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지 다시 찾고픈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

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독일에 대한 추억의 부스러기 중 하나는 LP와 관련된 기억이다. 유학시절, 가난한 학생의 신분으로 호사스럽게(?) 누린 취미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면서 마음에 드는 LP를 사 모으는 것이었다. LP 한 장에 우리 돈으로 200원도 주고 비싼 것은 1000원도 줬다. 꽤 많은 LP를 모았지만 그 중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LP는 클라라 하스킬의 음반이다. 특히,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하스킬의 연주는 자연 그 자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전문적인 연주기법과 곡 해석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내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연주는 그 자체로 최고의 것이다. 러시아 피아노연주의 대모라고 하는 니콜라예바가 하스킬의 연주에 찬사를 보낸 것을 보면 최고의 연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감성적인 느낌은 연주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하스킬의 인생을 알고 난 후엔 더욱 그랬다. 특히, 봄과 가을에 듣는 하스킬의 연주는 인생 그 자체이다.

하스킬은 1895년 루마니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피아노 연주에 천재성을 보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으나 17살에 찾아온 병마에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받았다. 척추의 비정상화로 4년 동안 몸에 깁스를 했고 세포와 세포가 굳어버려 몸 자체가 일그러져 20살의 젊은 나이에 곱추가 되었다. 병마의 후유증으로 인해 머리는 마치 마귀할멈처럼 희고 헝클어졌다. 그 동안 피아노연주는커녕 생과 사의 기로에 서있어야만 했다. 2차 대전 중에는 나치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겨우 연주활동을 영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스킬의 연주는 연주회마다 찬사를 받았고 협연한 동료들의 감사와 고마움을 받기도 하였다.

내가 하스킬의 연주를 들을 때 느끼는 것은 그녀의 천재성이 아니라 동료에 대한 감사와 배려이다. 하스킬은 자신의 천재적이었지만 항상 같이 연주하는 동료를 따뜻하게 배려했으며, 남 앞에서 오만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병마와 나치의 추적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삶 자체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했다. 항상 죽음과 삶의 경계선상에 있으면서도 겸손과 배려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그녀의 연주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어 연주의 감흥을 더하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들은 현재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항상 경쟁과 성취만을 생각하고 그 결과로 얻게 된 성취물에 대해 자만하고 오만하게 된 것은 아닌지. 자신이 타인보다 더 좋은 성적과 업적을 갖게 되었다고 동료를 비방하고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가을 향기를 맡으며 벤치에 앉아 위대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죽음의 기로에 서 있으면서도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 하스킬의 인생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고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고민이 깊을수록 나의 삶에 대한 성숙도 깊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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