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동두천 -1.1℃
  • 흐림강릉 1.7℃
  • 박무서울 0.6℃
  • 박무대전 3.2℃
  • 흐림대구 7.3℃
  • 연무울산 7.4℃
  • 흐림광주 5.9℃
  • 부산 7.7℃
  • 흐림고창 3.8℃
  • 제주 9.4℃
  • 구름조금강화 -0.5℃
  • 흐림보은 3.3℃
  • 흐림금산 3.6℃
  • 흐림강진군 5.9℃
  • 구름많음경주시 7.4℃
  • 흐림거제 6.8℃
기상청 제공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는데, 꽤 오래 전에 헤어진 고등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결려온 전화였다. 안부인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30여 년 전으로 되돌려진 것 같다.

그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내 친구, 아홉 명은 졸업 후 첫 모임으로 우리들의 주 무대인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얼마 되지 않은 대학생활에서 건방을 떨며 귀동냥했던 요령들을 이리저리 자랑삼아 우쭐거렸던 시간이 지난 후에, 어느 한 친구의 제안으로 우리의 모임을 뜻있게 보내자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이 있던 없던 일정한 부분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제법 순박하고 어른스러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야학이었다. 우이동 근처의 어느 교회에 아지트를 만들었고 복사기가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 우리는 야간학생 모집을 위한 50장이 넘는 포스터를 손이 부르트도록 직접 써가며 제작했다. 십시일반하여 청계천 중고서점에서 각각 80여 권의 책을 사들고 올 때는 왜 그리 가벼웠던지...

배우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은 쓰레기를 줍는 넝마, 편물점 여공들, 우이동 종점 89번 버스의 차장 등 여러 부류의 학생들이 모였는데 저마다 가정의 어려움으로 배움을 포기한 80여 명으로 나이는 우리보다도 훨씬 많은 지원자도 있었다. 이윽고 담당과목을 서로 서로 분담했고, 나는 수학과 사회를 맡았는데, 이제까지 가르침 만을 받아왔던 나에게는 익숙치 못한 상황이었다.

익숙치 못한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고 난 후, 제법 그럴싸하게 선생님으로서 자리를 매김하게 되었다. 한번은 가정방문으로 넝마주의들이 모여사는 막사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냄새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그곳, 편물공장에서 옷을 짜면서 천먼지를 뒤집어 쓰고 뿌였게 흰머리 할머니 같은 젊은 모습들, 얼굴이 피로에 지쳐 창백하게 보였던 차장 누나들... 우리는 교회로 돌아오면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말없이 울고 있었다. 내 젊은 날의 나눔과 배려의 시작이었다.

배려는 사람의 ‘존엄성과 존재가치’를 극대화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곧 배려일진데, 배려의 마음을 모르고, 때론 잊고 살고 있지요.

우리들의 대학생활도 마찬가지로 변했습니다. 학문탐구보다는 몇 년 후에 있을 취직이 목적이 되어버렸고, 스팩쌓기로, 경쟁 사회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봉사보다는 성과 위주의 기록남기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배려의 적극적인 형태는 나눔이라고 합니다. 뉴스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가족에 남기는 유산을 접하면서, 가진 자들이 사회를 향해 가져야 하는 자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부끄럽지만 우리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나눔은 수직적이고 가족에 한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세대는 무엇을 배울까요? 나눔은 인간의 성숙함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라고 합니다. 바로 참다운 행복의 근원이지요.

나눔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는데,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나누지 않기 때문에 나눔은 더욱 어렵고 익숙치 않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주기 시작할 때, 아이들에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물려받게 될 것이고, 나눔 덕분에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즐거움이 됩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후회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참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었어야 하는데 나누지 못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바로 나눔과 배려에 대한 후회입니다. 남을 향한 나의 배려는 나에게 배려로 돌아오고 나의 나눔이 세상의 나눔이 된다는 믿음을 믿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삼십 여년 전 처음 배우고 부끄럽게 행했던 나눔과 배려의 향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관련기사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