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사건은 여전히 그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처음에 제기되었던 학력 위조에 대한 의혹은 권력의 실세와의 연관성 및 특정 종교집단의 암투에 대한 음모론으로 진행되다가 이제는 적절하지 못한 남녀관계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신정아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은 사건 자체를 성추문으로 전환시켰고, 한 일간지에 실린 그녀의 나체 사진은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떻게 소비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신정아는 20대 중반부터 국내의 대표적인 화랑의 큐레이터로 일했고 주요 언론에 미술평을 게재했다. 30대 초반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광주비엔날레의 책임자가 된다. 만일 학부 학위조차 취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아마 그녀는 성공으로 가는 계단의 입구에 들어서는 기회마저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학벌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개인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비명문대 출신자에 대한 진입장벽 및 차별과 배제는 소수의 학벌 기득권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를 패배자로 전락시킨다. 최근들어 더욱 가속화되는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과 그 모든 치열한 준비과정은 한국사회에서 학벌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정비례한다.
21세기 한국사회의 한편에 학벌자본을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육체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분투가 진행된다. 섹슈얼리티의 상업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최근 한국사회의 흐름 속에서 청년들은, 특히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상품 가치를 지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린다. 성형, 다이어트, 운동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증가는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한다. 신정아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젊은 여성이 육체자본을 지니고 이 위에 학벌자본의 후광을 덧입힐 경우 누릴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나이 많은 남성이 권력을 소유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신분 상승은 대개 이 두 가지 자본의 결합에 의해서 가능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정아 사건은 대학 졸업장도 지니지 못한 미모의 젊은 여성이 명문대-그것도 미국 아이비리그의-학위를 지녔다고 사칭하여 이룩한 성공담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우울한 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