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하워드 진의 말이 요즘 들어 자주 생각난다. 뜻을 보자면, 어떤 상황이 치명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여기서 자신이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면 이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라는 각자 자신들만의 생각이 표출되어야 되며 그렇지 않고 ‘중립’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이 된다. 비슷한 예로는 과거 독일 히틀러 나치당시절의 독일국민을 들 수 있겠다. 나치의 활동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았다면 그 행동은 나치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말이 된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내 또래의 젊은 세대들이 바로 이런 ‘중립’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묻어 간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신념 없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중립적인 태도는 자신의 직업선택의 문제 혹은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무관심, 사회 부조리에 관한 무관심 등등이 있겠다. ‘남들이 다 하니까 자신도 따라한다거나 남들도 다 무관심하니까 나도 무관심해도 된다’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지성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기보다는 실천이 병행되었을 때 아름답다고 배워왔다. 그러므로 젊고 진리를 탐구하는 우리시대 대학생들은 지금의 포장된 ‘중립’을 추구하기보다는 보다 큰 실천적 지성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