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6.4℃
  • 맑음강릉 9.5℃
  • 구름많음서울 6.7℃
  • 맑음대전 8.8℃
  • 구름조금대구 10.1℃
  • 구름조금울산 10.4℃
  • 맑음광주 10.3℃
  • 흐림부산 10.8℃
  • 맑음고창 8.4℃
  • 구름조금제주 10.2℃
  • 흐림강화 5.5℃
  • 맑음보은 7.6℃
  • 맑음금산 8.4℃
  • 맑음강진군 11.4℃
  • 구름조금경주시 10.4℃
  • 흐림거제 11.3℃
기상청 제공

[1168호 독자마당] 우리는 표현하고 있는가

URL복사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물두 살의 나는 ‘평생 내가 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또,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물여섯의 나는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것’ 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조달 받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받은 만큼 표현하고 있는가.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한 가지 특성과 성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같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전달의 과정, 무게와 의미부터 형태까지 모든 것들이 각각의 결론이 되어 남겨지고 떠나간다. 깊고도 여린 그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는 일은 표현이 서툰 이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될 뿐이다. 남녀 간의 설렘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던 무렵, 그것은 아무리 손을 뻗어 내밀어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미안한 사람에게 사과는 빠르면서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너무도 무심하게.


청명한 가을날 곱게 자란 감나무의 감도 달게 익지 못할 것 같은 차갑고 냉철한 성격은 경상도 집안의 내력으로부터라는 꼬리말을 핑계로 삼았다. 그 무엇이 나를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나. 간질하고 뭉클한 감정들을 무수히 글로는 다루면서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꽤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친구들의 손 인사 뒤로 아른거리는 늘어난 부모님의 눈가 주름이라든가, 저무는 해를 등진 두 분의 늘어진 팔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날카로운 종이에만 온기를 불어 넣는 일이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 표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다. 미루고 미루다 데드라인에 맞추어 마음 졸이며 날려 써야 했던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겨울방학 일기 숙제 같은 것이라면 늦은 김에 조금 더 미뤄 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쉬이 고개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존재를 통하여 생겨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우리는 더 익숙해져야 한다. 


사회에서 형성된 집단의 일부에서, 자식 같은 강아지에게서, 재회한 연인에게서, 이성 간의 만남에서, 집 떠나보낸 자식에게서, 혹은 오래된 물건이나 쌓아 놓은 지난 물건에게서. 위대하고 어려운 사랑의 성질은 무수하지만 분명한 것은 날것 그대로의 표현은 어떠한 사이를 더욱 견고하고 살갑게 만든다. 다시금 나를, 그리고 당신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 또 일어나게 할 것이다. 가슴 미어지게도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 마음들을 꺼내어 온전히 전했던 순간들이. 


사랑은 사랑이다. 단지 그것일 뿐이다. 마음이 소리 내는 일이고, 진심으로부터 기원 되는 믿음이다. 우리는 전하고 있는가. 표현하고 있는가. 또 어제처럼 망설이다 몰래 숨겨두고 있지만은 않은가.

관련기사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살 떨리는 완벽주의로 만들어낸 늙은 부부의 순애보: 영화 ‘아무르’ 2012년 칸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무르’는 사랑하는 아내가 갑작스런 질병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신파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내러티브를 활용한 완벽에 가까운 형식미를 통해서 탁월한 드라마로 완성시켰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러티브의 탁월함, 그 살 떨리는 완벽주의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네케 감독은 영화 ‘아무르’의 도입부에서 외출 후 열려 있는 문, 도둑에 대한 잡담, 한밤에 깨어 있는 아내, 건네지지 않는 양념통, 흘러넘치는 커피 물을 통해서 사소한 일상에서 극적인 문제로 향해가는 이야기 전개를 천의무봉의 솜씨로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이용해서는 아내의 뇌질환 발병을 일단 부정한 후 다시 제시하는, 이야기가 직선적인 순서로 나아가는 단순한 방식을 배신하는 연출을 통해서 ‘눈 위로 걸어간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며 나아가듯이’ 이야기의 인위성을 가리면서 아내의 뇌 질환이 확인되는 극적인 순간을 스크린 위에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도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