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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신문

[독자마당] 회고록

우린 언제부터 강해 보여야 했을까?

 

우리는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대담한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 명예나 성취를 이룬 장면을 마음에 하나둘 담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좋은 것’을 닮고 싶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마냥 좋았던 건 아니더라. 자연스레 내가 닮고 싶었던 것은 나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끊임없이 달려가야만 한다는 압박은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전엔 뭔가 어려운 말로 나를 포장하려 했다.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약해 보일 줄 알았으니까.

 

나 혼자 모든 것을 이고 가는 세상은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인지, 이 길 끝에서 내가 바라는 모습이 정말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방황하던 시절을 ‘꿈을 좇는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끝없는 두려움이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실패가 두려웠다. 실패를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고,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들키는 것이 무서웠다. 모든 게 들키면 혼자가 될 줄 알았던 과거의 나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은 내가 가장 흔들릴 때 곁에 있었다. 관계는 강한 모습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오히려 솔직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비로소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진짜 다리가 놓였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나 스스로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비유와 포장은 내려놓고 가장 솔직한 나를 이야기할 때이다.

 

가면으로 얻어낸 것들은 손 안의 모래와도 같기에.

 

반복되는 하루를 장식하는 빌딩의 그림자 속에서, 이제 내게 남은 낭만이란 닳아버린 모퉁이를 찾는 일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다시 나의 세상을 짙푸르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러면서도 마음속 작은 불씨 하나만을 가지고선,

 

나약하고 미숙하게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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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대한민국, 희생자를 자처하는 우리 사회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사상인 시오니즘을 발전시켰다. 학살의 기억과 시오니즘은 세대에 걸쳐 군사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명분이 됐다. 그렇게 오늘날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민족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채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까지 보복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겪었던 민족의 아픔을 정체성으로 삼아 희생자 지위를 이어받는 후속세대의 사고방식을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라 한다. 과거에 받은 피해를 근거로 지금 행동에 도덕적 정당성을 호소하는 희생자 의식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을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만들었다. 한 예로 젠더 갈등 속에서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은 남성을 가부장제 속 수혜자, 여성을 피해자라 주장하며 사회적 배려와 보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혁명보다는 고결한 희생자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미러링이란 이름으로 혐오 표현을 반복했다. 반대로 젊은 남성층 일부는 병역 의무와 역차별 등을 근거로 피해자를 자처하고 인터넷상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성향을 정당화했다. 이들은 개인의 경험을 사회 구조로 결부시키는 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