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대표의 천진난만한 “V”, 유시민 장관의 “밥 좀 사세요” 란 말, 진중권 교수의 “할 말 없을 때 꼭 나를 지목해 눈 피하느라 바빴다”는 말, 빈틈없어 보이는 나경원 의원이 “토론 중간에 볼펜을 빌렸었다”는 말. 모두 손석희 교수가 진행했던 344번의 백분토론 안에 묻어난 이 시대 대표 논객들의 색다른 이야기다.
손 교수의 마지막 방송이라 그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토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래 시사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손 교수가 백분토론을 떠나는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다. 그래서 손 교수의 하차는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특유의 순발력, 위트, 판단력, 말솜씨, 목소리, 외모로 한국대표 토론 프로그램의 ‘조정자’로 자리매김한 손 교수는 마지막을 이야기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첨예한 논쟁의 장에서 조정자로 함께할 수 있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백분 토론은 이제 떠나지만, 제 머리 속에서 ‘토론’이라는 두 글자는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손 교수가 백분토론을 진행한 지난 8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토론 프로그램의 전부였고 백분토론 덕에 정치와 사회 전반에 무관심했던 내 삶에 ‘관심’이 자리잡았다. 한사람 한사람의 관심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손 교수의 하차로 우리의 토론문화는 뒷걸음질 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왔던 길을 다시 와야 하지만 희망적인 건 손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덕에 우리는 조금 수월하게, 그리고 조금 빠르게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권재홍 기자가 손 교수를 뛰어넘는 토론진행자가 되길 기대하며, 손석희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