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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순결주의에 빠진 '여우야 뭐하니'

서른셋 '소녀'의 요란한 딱지 떼기


여우는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동물이다.
MBC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극본 김도우, 연출 권석장)에도 희귀한 남녀가 등장한다. 주인공 고병희(고현정 분)와 박철수(천정명 분)는 각자의 성격도 특이하지만 매우 독특하고 험난한 이성교제의 길을 택함으로써 이 시대의 희귀본이 되기를 자처했다.

산부인과 검진 이후 자궁 모형을 끌어안고 거리를 활보하는 병희의 모습부터가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캠페인처럼 돌발적이었다. 그녀의 상상 속의 첫날밤마저 ‘바바리맨’을 방불케 했던 것 또한, 애초부터 드라마를 아름답게 만들 의도가 없었음을 증명한다.

이 드라마는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깨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서른세 살이 되도록 ‘처녀막’을 지니고 산 것 하나로 정체성이 규정됐던 ‘답답녀’ 병희가, 술김에 아홉 살 연하의 친구 동생 철수와 사고를 친 이후 갑자기 벼락 맞은 듯 돌변하는 것도 실은 여성에 대한 이중의 억압이다. 처녀성이 대체 뭐기에 사람이 하룻밤 새 ‘개과천선’할 수 있단 말인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그날 밤’ 이후 병희는 갑자기 자아라도 찾은 듯 용감해지고 당당해졌다. 그동안 어눌하고 어리숙하게 행동한 이유가 모두 ‘처녀막’ 때문이었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성 경험이 무슨 번데기를 깨고 나온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되는 양 그려진 것이다. 따라서 성 경험 없는 여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소녀’로 남아 있게 된다. 여자에게 ‘여우’로서의 내숭이 필요한 이유다.

엄밀히 말해 철수가 누나에게 ‘성폭행’ 당한 것으로 보이는 오이도의 그날 밤에 대해, 제작진은 내내 병희만 편든다. 성에 있어서 남자는 가해자 혹은 주도권자라는 속설은 더욱 강화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연애질’을 시작하는데, 그 모든 반대와 장애에도 병희가 배희명 박사(조연우 분)가 아닌 철수를 택하는 이유는 하나다. 병희에게도 철수에게도 그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첫날밤의 신성함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어서, 일단 ‘몸’으로 먼저 시작된 그들의 애정은 이리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에 필적할 순애보로 이어진다.

그것이 방송이 허용하는 대한민국 성의식의 현주소다. 제아무리 자유로운 척 깨인 척 해봤자 주인공들은 결국 ‘순결’을 바친 사람과 맺어지고 만다. 이 싱거운 결말을 위해 그 모든 눈요깃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여우야 뭐하니’를 통해 성 담론은 오히려 퇴보했다. 성은 여전히 특별 이벤트의 영역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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