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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개과천선’, 그대들은 왜 거기 있는가?

명품배우들은 왜 허수아비가 됐나?


궁금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 무대에 등장했을까? MBC 수목극 <개과천선>(극본 최희라/연출 박재범 오현종)에 드는 의문이다. 자기가 내뱉는 대사들이, 상대방이 자기에게 던지는 반응이 대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다음 행동을 견인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그런데 좀 들여다보면 같은 패턴과 같은 분위기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일종의 법칙 내지 틀이 있다. 급기야 배우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내가 알던, 내가 전에 극 속에서 보았던 그들이 맞는지를 말이다! 김상중, 김명민, 박민영, 김서형, 그 외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 그들은 지금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주어진 대사를 모두 앵무새처럼 읊고 있다. 뻣뻣하게 왔다갔다하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벌컥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장면은 그래도 맥락과 상관없이 ‘연기력’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점점 트집을 잡고 화를 내는 횟수가 늘고 있다. 모두가 맹렬히 소통을 거부하며 판을 깨버리고는, 불같이 화를 낸다.

곧 러브라인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탓에 돌출행동 중인 이지윤(박민영 분)만이 유일하게 이 대열에서 튄다. 극 속 세상과 상관없이 혼자 정의롭고 혼자 떳떳하기 때문이다. 차영우(김상중 분) 로펌의 인턴이자 김석주(김명민 분)의 오른팔로 설정된 이지윤에 대한 제작진의 설정은 “지방대 로스쿨 출신에 별 볼일 없는 인턴”이다. 그런데 입사 전부터 안면 있던 김석주가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그를 보좌하는 중대한 임무를 띠게 됐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인가. ‘속물’ 변호사였지만 엄청난 능력자이며 ‘승리’에 집착하던 김석주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이제 죄의식마저 안 느껴도 될 ‘신의 한 수’이자 면죄부인 건가.

2007년 말 허베이 스피리트 호 기름유출 사건을 연상시키는, 보상하지 않는 비정한 재벌과 피눈물 흘리는 피해지역 주민들의 이야기 또한 단지 초반 눈길 끌기용 에피소드에 불과했나. 접근 자체가 곧 ‘개과천선’하여 ‘영웅’으로 거듭날 김석주의 ‘심경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기름유출 사건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사회 공동체에 끼치는 심각한 해악, 성찰과 대안을 기대한 시청자는 그야말로 스타에 ‘낚인’ 것이다.

놀랍다. 한동안 ‘비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다가 다시 접한 지상파 드라마는 괴이할 정도로 낯설다. 저 정도였나. 시청률이 10%를 밑돈다는, 심지어 케이블과 종편 등 비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과 수치상 큰 차이 없다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지금 김석주의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 ‘악’인지 몰랐다는 데 있지 않다. 자기가 여기 왜 있는지를 모르는 게 그의 진짜 문제다.

MBC에서 뭔가가, 드라마를 구성하는 정말 중요한 어떤 요인이 빠져나간 듯하다. 시청자의 요구와 담쌓은지 오래인 탓인가. 뉴스는 공정하게, 드라마는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 대중과 함께 현재의 고민을 나누는 방송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청자가 바라는 ‘개과천선’은 능력자 김석주의 활약이 아니다. 믿고 볼 수 있는 방송으로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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