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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침묵(2017)

- 자신만의 진실을 감당한다는 것

어떤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선 이후부터 관객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스토리텔링을 시작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야, 그 두어 시간의 전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경우다. 그럴 때 관객은 잠시 ‘머물고’ 싶어진다. 여운이 남는다는 건, 오래 곱씹어보고 싶어진다는 게 아닐까. 정지우 감독의 <침묵>은 여운이 긴 영화다. 다 보고나서야 관객은 임태산이라는 주인공을 뒤집어 보고 다시 따져본 뒤 그의 깊은 침묵까지도 헤아리게 된다. 웬만한 영화에서 인물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원래 자수성가한 재벌인 임태산은 대단히 오만했다. “돈 앞에서 왜 오기를 부려?” 그러면서 세상 모든 이를 돈으로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고 믿었다. 최민식이 연기한 그 남자는, 과연 돈이 많다. 부와 명예, 권력과 사랑까지 모든 것을 손에 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약혼녀 유나(이하늬 분)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력 용의자로 하나뿐인 딸 미라(이수경 분)가 지목된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는 미라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덮을 수 없는 쓰라리고 허무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침묵>은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2013)가 원작이지만, 방향과 축을 새롭게 정해 인물의 내면 중심으로 펼쳐놓았다. 스릴러와 법정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활용하되, 결국 모든 요소는 인간적 고뇌를 증폭시키는 쪽으로 수렴된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임태산은, ‘돈’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간다. 남은 것은 돈뿐이다. 그 돈으로 그는 각각 다른 직업의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사거나 자극해 자기가 만든 판에 끌어들인다. 전부터 임태산 검거에 열 올린 검사 동성식(박해준 분)이나, 미라의 결백을 믿어 의심치 않는 변호사 최희정(박신혜 분), 충직한 비서 정승길(조한철 분), 유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극성팬 김동명(류준열 분). 임태산은 관객들에게도 중대한 임무를 짐 지운다. 관람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모든 걸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임태산은 맹목적이다 못해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인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진두지휘하여 하나의 결과물로 (버젓이)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혼자 다 뒤집어쓴다. 줄거리 상으로는, 여기가 ‘반전’이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그저 임태산의 뼈아픈 참회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처벌한 것이다. 임태산은 아무에게도 동의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나마 함으로써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을 감당하려 한다. 쓸쓸한 불가항력과 스스로 앞당긴 파국. 결국 남는 것은, 인생이란 때로 ‘침묵’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과의 분투라는 깨달음이다. 이 영화가 수많은 위장술을 뚫고 관객에게 기어이 전하고자 한 것은 진심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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