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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평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2018)

- 노래란 몸소 부르는 자의 것

영화를 보고 나면 ‘유연(柔軟)하다’는 낱말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부드럽고 연하다는 뜻풀이마저 어딘가 물 같다. 물처럼 소리처럼, 형체가 없으나 만져질 것 같은 어떤 것. 사랑은 그런 것일까. 잡아채지지 않으나 존재하고 있는, 이쪽이나 저쪽이라기보다는 그 너머의 아스라함에 가까운 묘연함.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주인공 윤영(박해일 분)은 (전직)시인이며 시의 리듬감으로 일상을 사는 사람이다. 십여 년째 시를 발표 못하고 ‘애매한’ 백수처럼 지내지만, 누군가 건드려 주기 전엔 목을 깃 속에 파묻은 거위처럼 웅크리고 있지만, ‘미친 것 같은’ 순간에 용기를 내본 이후 자기를 끌리게 한 리듬을 줄곧 좇는다. 유일한 할 일인 듯이 열심히. 


좋아하던 송현(문소리 분)과 느닷없는 군산 여행을 감행한 후 분명 그의 고여 있던 십년에는 균열이 왔다. 영화는 상영 한 시간도 더 지나 중간쯤 되면 갑자기 영화 제목을 자막으로 띄운다. 윤영이 가장 외로울 순간이며, 시간 순서상 ‘왜 여행을 갔는지’를 설명하는 서울에서의 전사(前史)다. 카메라는 군산을 독특하게 담아냈다. 역사의 흔적이 혼재된 모습들이 생경하고도 아름답다. 군산이라는 공간에 취한다. 아니 홀린다. 익숙함과 낯섦이 적절히 빚어낸 팽팽한 긴장감이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시간과 공간을 자기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이고 다시 펼치는 일종의 마술사 같은 장률 감독의 ‘베 짜기’ 실력은 일품이다. 


그런데 모든 의미심장해 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끈 풀리듯 날아가 버리고, 관람 후 시일이 지나면 뜻밖에도 ‘노래’가 크게 남는다. 장률 감독은 이런 것을 예상해 “곱씹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소개하는 중이다. 잘 안 된 남녀의 시시한 연애실패담일 수도 있을 줄거리, 너무나  유명한 배우들이 툭툭 단역처럼 등장하는 ‘화려한 캐스팅’은 어느 새 배경으로 물러난다. 


‘노래하다’라는 동사가 얼마나 소중한 성취인가를 기어코 발견하게 한다. 그렇다. 노래는 직접 불러 제 몸으로 소리를 내는 사람의 것이다. 바람과의 공명 또한 적절한 때 알맞게 있어줘야 한다. 사람의 몸을 타고 흘러나와야 노래다. 고로 노래는 인간의 것이다. 시작(詩作)하고 시도하는 사람만이 잠시나마 음미할 수 있는. 


한없이 군산에서 헤매던 윤영에게는 이제 돌아온 서울도 집도 낯설고 사는 게 어쩐지 더 쉽지 않아졌다. 더 애매하고 더 이상한 채다. 어쩌면 이 꿈 같은 여정은 실제로 간 곳이 아니며 실제로 만난 인물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들 어떠하리. 관객의 가슴에는 출렁이는 이야기의 바다로 진입할 배 한 척이 남았다. 귓가에 아련한 운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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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지식의 습득은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 정보를 수집해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읽기다. 각 대학들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인문·예술적 소양이 없으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고전과 명저 읽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교과 과정으로 끌어들여 왔다. 고전과 명저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진 책들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하는 정신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전과 명저라 할 수 있다. 각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뽑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을 제출하는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면접만으로 인재를 선발하거나, 인문학책을 토대로 지원자들 간의 토론 또는 면접관과의 토론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문학과 예술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