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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한국 드라마는 진화 중

악역의 놀라운 진보


드라마는 생물이다. 살아 움직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2009년 한국 드라마는 그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지금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 심지어 방영 중에도 수시로 실시간 평가들을 다음 회에 반영하는 순발력 등은 놀랍다. 막장드라마 논란 또한 인간의 욕망과 심리에 충실한, 특히 여성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 불편해 하는 우리사회의 편견이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고정관념을 깨고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악역의 진보는 눈부실 정도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찬란한 유산>은 2009년 현재 한국 대중의 욕망을 꿰뚫었다. 그리고 착하게 살면 은인을 만나고 부자로 복 받고 산다는, 만고의 도덕을 실감나고 세련되게 그려냈다. 쉬울 것 같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한국형 극작술이다. 선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상황을 물샐틈없이 짜버리고, 악역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악역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선한 사람들은 진정성 하나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선덕여왕>은 방영전의 모든 선입견을 깼다. 사극의 ‘여성판’이거나 <대장금> 혹은 <천추태후>와 비슷한 류로 여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처음에는 길가메시 이야기 이래 영웅담의 본질인 홈커밍 스토리 구조에 충실했다. 하늘의 뜻에 의해 버려진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본래의 고귀한 신분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선덕여왕>의 최대 수확은 선과 악의 다중성이다.

기존 사극은 선과 악의 구도가 선명하다 못해 뻔했다. 선은 바보스러웠고 악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선덕여왕>에서 악은 다만 모호할 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깊이 고심하며 기회를 엿본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헤아려 빈틈을 노릴 뿐이다.

여걸 미실은 심리 파악과 판세를 읽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명분과 설득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진정한 리더십이다. 그러나 ‘하늘’은 미실에게 왕의 운명을 내리지 않았고, 왕으로 태어난 덕만은 준비 안 된 애송이였다. 왕으로 태어나지 못한 대다수 시청자는 그래서 미실에게 오히려 감정이입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자와 원래부터 주어진 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그럴 듯한 말장난과 장면들로 피상적으로 보여준 게 아니라 정말로 정치사극으로 진화한 것이다.

<내조의 여왕>도 화제가 되고 시청률이 오르면서 점점 더 재미있는 작품이 되었다는 점, 캐릭터의 힘을 팽팽하게 유지한 점이 돋보였다.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만화적이고 코믹한 요소에서 출발해 생활의 맛과 멋을 잘 그려낸 점도 성과다. 블록버스터 중 유일하게 성공한 <아이리스>의 경우 주연배우들의 경력과 기존 이미지 전체를 활용해 구조를 짜고 드라마를 이어가면서 시청자와 수시로 소통 중이다.

요즘 드라마들은 대작일수록 유기체처럼 살아 꿈틀거린다. 제작팀 전체가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지를 느끼게 한다. 새로운 제작 시스템이 시도되고 안정돼가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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