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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과거의 외피를 입은 미래형 연인들

쓰레기와 칠봉이는 정말 과거에서 왔을까?


지난 연말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를 보면서 가끔 착각하곤 했다. 아니 실은 내내 그렇게 믿으면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1994년에 저런 남자와 저런 여자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드라마 속 그들처럼 ‘우리’도 저런 대화를 나누며 1994년께의 시간들을 보내며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대로 착각이다. 1994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드라마는 <모래시계>(SBS)였다. 그러니까 당시 최고의 남성 캐릭터는 최민수가 연기한 태수, 박상원이 연기한 우석이었다. 고현정이 맡았던 혜린이 1994년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성 캐릭터였다. 검사인 우석은 자기가 믿는 가치관으로 인해 친구 태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 남자다. 태수는 사형장에 들어가면서도 죽마고우에게 “나 떨고 있냐?”라고 밖에 말할 줄 몰랐던 남자다. 자기의 감정을 죽는 순간에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남자, 다만 핏기 없는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 태수를 보며 대다수 시청자가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했다는 뜻이다.

눈물은 여자의 것이고 감정 절제는 남자의 전용물이며,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는 게 불문율 비슷한 틀이었다. <모래시계>의 ‘애절한’ 사랑은 그런 식의 서사를 갖고 있었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은 시청자들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애이불비(哀以不悲)’를 구현해야 연기 잘한다는 평을 듣던 때였다. 시대의 비극은 모든 이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아야 했고, 다들 저항하지 않고 고스란히 운명으로 감수했다. 그런 정서가 사랑에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2012년의 <응답하라 1997>와 2013년의 <응답하라 1994> 등 소위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기 요인을 복고 열풍에서 찾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복고는 외피일 뿐이다. 물론 팔도 각지에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이 ‘신촌 하숙’에 모여들어 풀어놓는 1994년의 이야기는 고증과 사실적 에피소드들을 통해 굉장한 현실감을 주었다. 단박에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1994년으로 돌아가 대학생이 된 자신을 보는 것 같은 판타지를 중년을 앞둔 주 시청층에게 실감나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레기(정우), 칠봉이(유연석), 나정(고아라)이는 1994년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완전히 신인류다. 하숙집을 거쳐 간 모든 인물들이 다 그렇다.

대한민국 드라마 사상 한 번도 존재해 본 적 없는 미래적 캐릭터들이었다. 세 사람의 길고 지난한 ‘나정이 남편 찾기’ 과정을 보게 만든 힘은, 이 셋의 서로에 대한 놀라운 배려와 통합적 이해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높은 자존감이었다. 그들은 찌그러진 데가 없는 스스로의 탄력성으로, 상대방과 세계를 이해했다. 대화의 기본을 아는 사람들이어서, 말로 감정과 사랑을 잘 전달할 줄 알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법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이제껏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소통의 공간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응답하라 1994>시리즈는 미래지향적 ‘(가상)모델’로서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의 개연성은 이렇게 새로운 길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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