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매일 불안·초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 불안하고 초조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따른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혼란한 시대에 살았던 공자는 인(仁), 지(知), 용(勇)을 위기 탈출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공자가 제시한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으며,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삼달덕(三達德)’은 누구나 갖출 수는 있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위기(危己)’와 ‘위기(爲己)’다. ‘위기(危己)’는 ‘자신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어떤 위기든 자신부터 바로잡지 않고서는 쉽게 대처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위기(爲己)’는 도를 자기 몸에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절대다수가 위기보다는 ‘위인(爲人)’에 익숙하다. 위인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위기는 학문을 통해 남을 이루어주지만, 남을 위한 학문은 끝내 자신마저 잃는다. 위기는 세상과 동떨어져 고고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한국과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사용한 전통이지만 위기에 사용하면 유용한 지혜다.
위기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은 ‘뿐’ 정신이다. 이 정신은 불평불만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뿐’정신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도 ‘뿐’정신이었다.
어떤 일이든 먼저 대가를 기대하면 충성(忠誠)할 수 없다. ‘충’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성’은 성실이다. 초등학교 급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성실은 이 세상을 존재케 하는 원리이자 철학이고, 인간이 반드시 추구해야할 삶의 덕목이다. 『중용』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은 존재할 수 없다.
성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결코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한 알의 열매는 봄부터 가을까지 한 순간도 게으르지 않은 자에게만 돌아간다. 그래서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않아도 언제나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 때문에 매일 노심초사다. 노심초사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과 특징을 제대로 파악한 후 ‘목숨 걸고’ 매진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한 후 모든 에너지를 쏟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국 일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바로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퇴계를 비롯한 한국과 중국의 성리학자, 성철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이 추구한 중요한 공부 방법이었다. 퇴계와 성철 스님이 평생 추구한 경(敬)과 선(禪)은 바로 집중력 공부다.
위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죽을 때 까지 위기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문제는 위기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 방법을 밖에서 찾는 순간, 위기의 강도는 결코 줄지 않고 오히려 높아질 것이다. 사계절이 순환하듯, 물이 끊임없이 흐르듯, 새 학기가 다가오듯, 쉼 없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만이 위기 속에서 길을 찾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