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깊게 생각하길 싫어한다. 진지하게 사색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질 좋아한다. 고전보다는 만화 읽기를 좋아하고, 사색을 자극하는 명화보다는 선정적인 오락영화를 즐겨 관람한다. 즉 내면적 성숙을 꾀하거나 이성적으로 사유하기보다 외적 치장이나 감각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같은 경향이 젊은이들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기성세대보다 청소년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사소한 일로 폭력을 휘두르는 젊은이들이 많고, 순간적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자살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조금함, 신경질, 충동적 행위가 일상의 행위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산업화가 가져 온 의식의 압축이란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다. 산업화는 학문과 정보매체의 발달을 가속화시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양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가 우리의 의식수준을 높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가속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삶의 프로세스가 현저하게 감축되었다. 프로세스의 감축은 인간생활과 관련하여 수고를 크게 덜어주었지만 시간을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단축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의 단축이 인간적 질의 떨어짐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의식에 있다. 육체 역시 인간에게는 소중하지만 인간이 진실로 인간인 까닭은 의식에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고로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람들은 그의 육체적 외양이 변했다고는 말할지언정 그 인간이 변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역으로 어떤 사람이 신체적 외양은 같은데도 어느 순간부터 아주 진지한 사람이 되었다면 인간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의식에서 찾으며, 한 사람의 의식 수준에 비추어 그의 인간적 질을 평가한다.
한편 인간의 의식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키워 나가면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시간적 존재이다. 따라서 시간의 단축은 의식의 압축으로 귀결되며, 의식의 압축은 곧 인간적 질의 압축을 의미하게 된다. 현대인의 인간적 질이 점차 떨어지는 이유, 즉 현대인이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근본 원인은 바로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로부터 귀결된 프로세스의 단축에서 찾을 수 있다.
스포츠는 산업화과정에서 사상된 프로세스를 복원시켜줌으로써 압축된 의식을 확장시켜 줄 수 있다. 등산의 예를 통해 이 점을 알아보자.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고산지대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산에 올라갈 수 없었던 신체허약자나 장애인도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라 조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걸어서 등산하는 풍습이 없어질 수 있고, 등반 과정 중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던 상호 부조의 우정, 노력, 인내심, 용기와 같은 덕의 함양을 위한 훈련이 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등반스포츠는 케이블카라는 과학기술에 의해 사상된 프로세스를 복원시켜 줌으로써 참여자에게 덕의 함양을 위한 훈련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비단 등산만이 아니다. 축구, 농구, 태권도, 마라톤 등의 스포츠는 아직 기술적 연관에 의해서 프로세스가 사상되지 않은 영역이다. 우리는 이러한 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기쁨과 고통을 맛볼 수 있고, 땀을 흘리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성취감이나 패배감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과학기술에 의해 사상된 프로세스를 다시 복원시켜 준다는 점에서 활동 그 자체로서 교육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