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흔히 우리가 운명이라고 하는 교향곡을 들어보셨나요? 들어보셨다면 혹시 어느 지휘자가 어느 교향악단과 연주를 한 것인지를 기억하십니까?
흔히 클래식 음악연주라면 우리는 카라얀을 생각합니다. 물론 카라얀의 음악성과 상업성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돋아나는 이 봄에 나치에 부역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카라얀을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의 기억속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음악가는 어린 나이에 음악을 전공으로 시작합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작곡자와 우리에게 익숙한 장영주, 장한나 등의 연주가가 일찍 음악을 전공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조금 다릅니다. 그의 아버지가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에 활약했던 유명한 지휘자인 에리히 클라이버입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나치 통치하에서 ‘저주받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를 거부하던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취리히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화학을 계속 전공할 수 없었으며 아버지 몰래 뮌헨의 3류 극장에서 견습생으로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그의 실력은 1974년 바이로이트 연주를 계기로 일반 청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연주녹음은 주로 실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의 녹음 대부분은 명연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 것은 운명교향곡의 백미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카라얀의 지휘와는 다른 템포의 긴장감, 시원하게 몰아가는 각 악기의 선율의 조화 등은 개인적으로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카라얀의 곡해석보다 더 탁월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음악은 로직이 아니라 감성(Gef ahl)이기 때문에 청중의 판단에 따라 다르지만.
역사에 있어서 가정(if)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만약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전공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더라면 현재 클래식 음악계의 지휘자에 대한 평가의 판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많은 클래식 팬들을 더 열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비록 대학졸업 이후에 발휘됐지만 그의 열정은 어느 누구도 막지를 못할 만큼의 대단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음악적인 재능보다 우리를 더 끌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닐까요? 히틀러의 통치아래에서 음악에 대한 회의를 느낀 아버지의 만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학력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철두철미한 음악적 신념에 의해 그의 뜻을 굽히지 않고 펼친 것입니다. 그의 음악적인 욕구 및 정열은 그 어느 누구도, 어떤 제도도 그를 방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희망을 결심으로 만들어 실행하는 힘, 그러한 신념은 자신의 관심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이 열정을 가질 수 없는 강제에 의한 교육, 참여의식이 낮은 강의는 자신의 신념을 약화시킬 뿐이며 오히려 그 참여에 대한 거부감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자신이 노력한 일에 대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1년 새봄을 맞이한 우리 학생들을 어떨까요? 또 학생들의 진로를 인도하는 우리 교수님과 직원선생님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학생들은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을 목표를 정했는가요? 그리고 우리 교수님과 직원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욕구에 충족되는 강의와 제도의 제공에 충실하고 있는가요?
고여있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절대로 썩지 않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학생들의 요구와 열정을 충족시키는 강의와 제도를 만들어주고 학생들은 그 틀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사를 때 진정 이 나라의 떠 안을 젊은이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