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1년여 간 한국 드라마는 한 치도 '김삼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얼굴과 이름만 다를 뿐 여주인공들은 모두 김삼순의 아류였다. 이 드라마의 주요 뼈대는 '공식'을 넘어 아예 신화소(神話素)로 자리를 굳혔다.
못생기고 보잘 것 없고 21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답지 않게 몸매마저 형편없는 노처녀가, 나무랄 데 없는 매력남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결말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방영 당시에는 뜻밖의 신선함을 주었던 설정이 어느덧 유형화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사극의 여주인공들마저 남자를 고르고 선택해 미래의 영웅으로 키운다. '서동요'에 이어 '주몽'과 '연개소문'에서도 희대의 영웅들은 젊은 날 모두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아씨의 치마폭에 감싸여 있다.
이제 김삼순처럼 망가지고 그녀처럼 우뚝 일어나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공하는 여주인공은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전형적인 인물이 됐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피엔딩으로 안착하며, 4각 연애는 연애과정에 긴장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극을 지루하게 만들며 들러리만 대거 양산할 뿐이다. 시청자의 공감이 끼여들 여지란 없고 모든 것이 공식화돼 있다.
지난 29일 있었던 '제1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SDA 2006)'는 마치 최근 한국 드라마의 풍토를 실토하는 행사처럼 보였다. 종영한 지 이미 1년 3개월이 지난 '해신'이 장편극 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지난해 7월 종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이 미니시리즈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완벽한 극작술을 자랑하는 '위기의 주부들'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중시한다는 주최국의 심사기준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한중일 3국의 나눠먹기 수상 속에서 국내 시청자를 더욱 아연케 했던 것은, 한국의 후보작이 대부분 최근 것이 아닌 철지난 '옛날' 드라마라는 사실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결과에도 사정은 있다. 그간 수없이 쏟아져 나온 한국 드라마들은 대부분 '내 이름은 김삼순'과 '해신'의 아류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삼순이' 혹은 작가 부문 후보작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이 되지 못해 안달이었던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들과, 때아닌 장편 사극 붐으로 한 주도 '칼싸움'이 그칠 날 없었던 지난 1년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류'의 중심에서 치러진 잔칫상에는 정작 내놓을 것이 없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