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세 늦깎이로 우리학교에 입학해 제1기 음악대학 학생으로서 대학생활을 보낸 신현석(성악·61학번) 동문은 현재 일본에서 목사로 재직 중이다. 신현석 동문을 만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과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들을 들어보았다.
성악가의 꿈을 향한 노력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해 명예제대한 후,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던 신현석 동문은 우연히 안두화 초대 이사장의 운전수로 일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성악가의 꿈을 꼭 이루고 싶던 차에, 계명대학교에 음악대학이 설립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음악대학 입학을 준비했고, 마침내 우리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대명동 동산에 올라가 발성 연습을 하거나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을 바로 외우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했고, 독창이나 지휘에 선발돼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가을음악발표회에서 성악과 대표학생으로 뽑혀 선교사들과 학생들 앞에서 나운영의 ‘달밤’을 부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성악가에서 목사로
1964년 일본공연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만난 구니타치음악대학 졸업생의 소개로 일본 구니타치음악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떠났는데 입학시험이 주일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일본에서 지낸지 2년째 되던 1967년, 입학시험을 재응시하여 구니타치음악대학에 합격했다. 학교를 다니고 있던 중 1967년 4월, 일본 동경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동경신학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신현석 동문은 고민 끝에 동경신학대학 3학년 편입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잊지 않았던 성악의 길
목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성악의 꿈을 놓은 것은 아니었기에 미국 유학과 동시에 웨스트민스터합창대학에 입학해 음악공부를 계속했다. 4년 전부터 일본 롯폰기남성합창단에 가입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현석 동문은 모교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학교 음악대학에서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세계적인 사람들이 많이 자라나길 바랍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자랑스러운 계명의 모든 후배들에게 하나님의 인도가 따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