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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독일과 일본,같은 과거 다른 책임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등 주변국에 큰 피해를 입힌 주범국가 독일.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으로 위안부, 마루타 실험, 200만여 명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일본. 인류가 범한 가장 잔혹한 행위이며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이 두 국가는 같은 역사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빌리브란트 서독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2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에 헌화를 하던 도중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 숙여 오랫동안 묵념을 했다. 해마다 독일 총리와 대통령은 연설 등으로 사죄를 거듭 표명하며 반성하고 있다. 또한, 나치전범의 공소시효를 없애 지금도 집요하게 추적해 재판에 회부하고 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나치의 만행을 교과서에 낱낱이 실어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숨기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했다.

빌리브란트 서독총리와 대조적으로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전범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참배를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각종 전쟁기념물로 가득 찬 박물관까지 있다. 초·중·고 교과서에 “일본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을 맞은 피해국이며 동북아시아에 현대화를 이끌어 준 선구자 역할을 했다”라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일본의 위안부 책임에 대해 ‘회피’만 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60명. 모두 80~90대 고령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속에 있는 상처를 치유할 시간마저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독일이 정말로 전범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깊이 반성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이 전 세계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할 당시 미국과 주변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사죄를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의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났기보다 패전국가로서 당연히 치러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만행은 동아시아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2차 세계대전 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신생국들은 대부분 인권 의식이 미약한 국가들이였다. 즉, 일본이 침략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사과를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사과는 형식적인 것에 그쳤고 오히려 지금에는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미화시키려한다. 지금이라도 과거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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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