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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두면서 가까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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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남자 친구는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라 당신에게 질려가는 사람이다. 물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대로 솔직하게 대답하는 성격이 다소 현실적이라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 싫은 자신은 그의 현실적인 성격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가 애정이 식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어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남자에게 자꾸만 더 질려버리고 마는 여자가 되고 만다. 사랑의 약자, 즉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상대방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채 자신의 감정조차 섣불리 표현할 수 없다.

행여나 자신 때문에 그의 마음이 식어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럴수록 멀어지는 남자의 마음도 모른 채.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해야 할 최선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현실적인 성격을 고치는 것일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좀 더 그와의 거리를 둘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까워지는 방법만을 알고 있을 뿐 거리를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적당한 거리감이 관계를 더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만들어 주는 방부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이상 불안에 떨지 말고, 자신을 좀 더 가꾸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길 바란다.

그래서 상대가 당신을 궁금해 하도록 만들고, 조금씩 괜찮은 혹은 그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호기심이 일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만이 남자의 식어가는 감정을 다시 되살릴 수 있다. 그의 의도적인 피자 토핑 사건은 사랑의 승자만이 갖고 있는 여유로움에서만 가능하다. 그는 그만큼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확신이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가 없어도 잘 살 수 있고, 또한 앞으로 더욱 괜찮은 여자가 되어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가망성을 심어주도록 하자. 그 때 긴장하게 되어 당신을 다시 되돌아 볼 때만이 그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고, 비로소 당신이 사랑의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남자친구
제 남자친구는 현실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나랑 결혼할꺼야?” 라고 물었더니 “아직 여자를 사귀면서 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아”라고 말하더라구요. 어느 날은 피자를 먹었어요. 남자친구가 피자토핑을 흘렸는데 그게 제 옷에 묻었어요. 그러면서 “나 밉지?”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응”이라고 말하니깐 “일부러 그런 거야, 네가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싫어지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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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