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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거리는 상대에 따라 맞추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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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쁘다고 해도 연락이나 만남을 강요하는 이유는 당신과의 사랑이 불안하기 때문이고, 그런 남자 친구가 불편한 이유는 조금씩 지쳐갔기 때문이다.

즉 서로 좋아서 사귀게 되었지만 더 좋아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은 남자 친구 쪽이다.(자신이 원하는 만큼 사랑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집착에 빠진다) 그래서 자기 기준대로 당신의 사랑을 평가하고 당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있어도 부족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아직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집착에 빠질 가망성이 큰 시기라서 이해와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과는 상관없이 고집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내일 무조건 나와 만나!”, “공부는 나랑 만나고 나서 밤에 하면 되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상황에서 남자 친구를 변하게 할 수는 없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 어떤 충고조차 애정이 식은 증거로 여기기 때문이다.

먼저 그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다면 자신의 애정과 생각을 담은 편지를 한 통 건네 보도록 하자. 편지 내용은 그 동안 느꼈던 점과 자신의 할 일, 그러면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애정 상태로 채우면 된다.

그도 생각이 있다면 편지를 읽고 친구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집착을 고쳐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집착하거나 당신의 시간을 허용해주지 않는다면 남자 친구와의 만남 자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자신도 남자 친구에게 좀 더 맞춰줄 필요성이 있다. 그 같은 성향은 그 남자 친구와 사귐으로 인해서 당신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락을 자주하고 많이 만나서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더라도 그가 정말 괜찮은 남자라면 그 시간을 허용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나의 경우는 헤어지고 나서야 나의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 때 당시에 그 어떤 충고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모든 시간을 독점하려 했었고, 그녀의 친구마저도 질투했다. 서로의 자유를 허용해주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도 뒤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며.
'집착이 심한 남자친구, 어떡해야 할까요?'
저는 두 달째 남자친구와 교제 중입니다. 처음엔 둘 다 연애 초반이라 자주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바쁜 날에도 자꾸만 연락을 강요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저에겐 조금 힘이 듭니다. 아직 연애한 지 두 달밖에 되질 않았는데, 바쁘다고 얘기해도 연락이나 만남을 강요하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경험이 많이 없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상처가 안 되고 생활에 지장 없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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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