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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은 친서민정책의 핵심

인플레이션 공포(恐怖) 현실화되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같은 달보다 5.3% 상승했다. 이는 2008년 8월(5.6%)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물가상승률이 5%대에 이르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놀랐다는 반응이지만 서민들은 공포에 질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낙관적인 것 같다. 8월 물가가 치솟은 건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채소 값이 폭등하고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 같은 일시적 내지 외부적 요인 때문이라고 했다. 채소류 가격과 금반지 가격이 전월 대비 각각 53%, 17% 오른 것 등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자금)이 너무 많이 풀려서 주요국들도 인플레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어려운 가운데도 정부가 노력해서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9월 물가는 3%대로 안정될 것이며 올해 4% 물가 목표도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4.5%, 물가상승률 전망치 4%를 당초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들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가란 기후변화에 따른 일시적 등귀나 대외 요인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를 대외적 요인, 일시적 요인에만 맡겨둔다면 “가뭄에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天水畓)”과 같아서 물가관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국내 물가는 2008년에 3%대 작년에 4%대 그리고 올해에 5%대까지 올랐으니 상승추세가 놀라울 것도 없다. 이런 가운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대두되고 선심성의 방만한 재정운영, 통화관리의 어려움으로 앞으로 인플레가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작년, 재작년부터 인플레이션 공포(恐怖)를 우려해서 정부가 효과적인 물가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정책당국자는 ‘물가안정이 최고의 서민 복지’라는 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무상복지에 대한 요구가 점점 거세지는 속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물가안정은 유지되어야 한다.

8월 소비자물가가 급등한 것은 특히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돼지고기, 전세, 휘발유 등의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올해 초까지 소·돼지 전염병인 구제역(口蹄疫)을 막기 위해 돼지 300만 마리를 대거 살(殺)처분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6월의 돼지고기 가격은 작년보다 46.3% 올랐고, 8월엔 상승률이 27.9%를 기록했다. 이런 가격 상승은 김치찌개 등 돼지고기를 쓰는 외식에까지 영향을 미쳐 전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다만 최근 들어 가격 급등세가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다.

휘발유 가격은 최근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유가를 비롯한 물가에는 하방 경직성이 있다. 유통구조 등의 영향으로 한번 오른 가격은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더라도 물가가 안정되기보다 여러 가지 수급상 불합리한 부작용이 생길 뿐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전세금이다. 8월의 전세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5.1% 오르면서 2003년 3월 이후 8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휘발유와 돼지고기는 그나마 일시적인 요인 및 외부요인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전세금은 그렇지 않다. 전세가격이 치솟는 건 부동산 대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과거에는 이맘때면 추석 제수 비용이 오른다고 걱정했지만 올해 물가상승 추세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미 인플레 기대심리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물가 관리는 서민가계의 안정을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다. 소득이 없는 실업자, 노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게 인플레이션은 치명적인 위협이다.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올해에 노인들의 연금은 2.9% 오른 반면 공무원 봉급은 무려 5.1%가 올랐다. 실업수당이나 최저임금도 다소 오르지만 근로자나 자산가의 소득 증가율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면 노인, 실직자 및 서민계층의 생활수준은 저하되게 마련이다. 그들은 인플레를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단이 없다. 물가가 오르면 그들의 생활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서민계층은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실제로 최근 치솟는 물가 때문에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언필칭 내세우는 친서민정책이 이들을 보살피는 정책이라면, 물가안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친서민 정책이나 정치권이 구애하는 복지정책도 사실상 공허한 것이다.

인플레 공포는 이명박 정부가 당면한 심각한 정치,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감소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핵심 쟁점이 될 듯하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그동안 좌클릭으로 기울어서 반(反)시장 정책을 양산해왔다. 물가관리를 책임져야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인플레이션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 추진해온 공생발전, 동반성장, 이익 공유 및 각종 가격규제와 시장개입은 물가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가는 정부가 찍어 누른다고 안정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백화점들이 입점 중소기업의 판매수수료율을 내달부터 3~7%포인트 내리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체 CEO들에게 동반성장을 위해 통 큰 양보를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라고 한다. 판매수수료 인하는 연초 기름 값 100원 인하에 이어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한 또 하나의 사례다.

친서민정책을 내세우면서 정부가 가격결정에 개입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또 다시 1970년대, 8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가격규제 및 시장개입의 부작용 중에 심각한 것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물가상승이었다.

우리 경제가 근래에 비교적 물가안정을 경험하게된 것도 가격 자유화를 추진한 덕택이었다. 최근에 물가불안도 정부가 가격규제와 시장개입을 확대한 부작용이라고 본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고물가로 서민을 핍박하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이다. 이런 꼼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가격통제 기구로 만든 김동수식 과잉 충성의 결과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백화점과 주유소를 습격했다. 앞으로도 대기업, 병원, 금융기관, 대학 등 닥치는 대로 습격한다면 물가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감세는 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며 친기업 정책은 기업에 유리한 정책이라고 보는 ‘진보적’ 시각이 있다. 그러나 친기업 정책이 기업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물가를 안정시켜서 서민 생활을 개선하면 이것이 바람직한 것 아닌가.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재정지출이나 조세부담이 아니라 기업투자이다. 따라서 정부도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무하고 친기업적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서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지출을 줄여야한다. 법인세, 유류세 등 기업생산과 직결되는 세금도 낮춰서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휘발유 가격 폭등이 8월 물가상승의 주요요인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도 유류세를 깎아줌으로써 물가안정에 일조하면 안 되나? 물가는 치솟는데 재정지출, 법인세, 유류세 등 정부의 몫을 고수하는 것은 물가안정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물가는 안정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정책과제가 아니다. 물가안정은 서민가계를 안정시킨다는 점에서 친서민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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