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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만든 국가인권위를 무너뜨리는 이명박과 현병철

인권위원 인선절차 및 검증절차의 제도적 공백을 공론화


이명박 정부 덕에 유명해진 국가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인권을 전담하는 국가기구로 출발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향상과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정책권고 등을 하는 곳이다. 2001년 만들어졌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를 흔드는 일이 많다 보니 인권위가 매우 유명해졌다.

인권위는 국가기구이지만 국가의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침해를 방지하는 제도 관행을 권고하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기관인 경찰이나 행정기관, 구금시설에서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이 인권위 진정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인권위가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는다면 국가기관에 의해 인권침해를 받은 사건들을 제대로 조사 할 수 있겠는가.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
인권위는 한국만 있는 조직이 아니라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인권보장체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만든 기구이다. 국가인권기구는 1946년부터 시작된 고민과 논의 결과로 199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역할, 성격 및 책임을 구체화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주요원칙을 밝힌 ‘파리원칙’이다. 국가인권기구는 인권분야에서 총괄적인 권한을 가지며 여타 관련 행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핵심 기구로 상정했으며 독립적인 기구이다. 이는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 1993년 세계인권대회와 유엔총회에서 승인으로 공식화되었고, 그 후 유엔과 유엔인권규약에 가입한 나라에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촉구하여 현재 90여개의 국가에 국가인권기구가 있다.

한국도 인권위는 준국제조직으로서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권활동가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의 공약에서부터 출발한 인권위 논의는 1998년 9월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1999년 4월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구체화되었다.

3년 동안 국가인권기구의 위상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당시 일부 법무부가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에 반대하는 인권활동가들이 2000년 12월부터 1월까지 단식노숙농성을 하는 등 2년여의 치열한 싸움과 논쟁 끝에 독립국가기관으로 탄생했다. 2001년 11월 25일 입법·행정·사법 등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 설립됐으며, 역할과 독립성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의 롤 모델이 될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의 독립성 훼손 시도
첫째,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였다. 2008년 1월16일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 등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인권위를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때문에 지나치게 격상된 조직의 위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시킨다고 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직제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며 그 기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국내에서는 인권활동가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숙농성을 하였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했다. 인권위는 준국제조직이기 때문에 유엔 최고대표실에서 우려의 서한을 정부에 보내는 등 국제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인권위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를 멈췄다.

두 번째 시도가 인권위 조직축소였다. 2008년말 인권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촛불인권침해에 대한 결정이 날 즈음인 12월 8일, 행정안전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정원을 50% 줄이고 지역사무소를 축소하라고 통보하였다. ‘조직이 비효율적’이라는 행정안전부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빌미 였다. 정부는 경제위기 때문에 정부기구를 축소하고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며, 인권위조직을 감소하는 내용이 담긴 [‘09년 정부조직 관리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다른 국가기구의 축소는 2%이상이 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아도 이는 핑계다. 여론이 좋지 않자 정부는 1월에는 30% 감축안을 제시했으며, 3월에는 21.2% 감축 및 지역사무소 1년 유예 방안을 인권위 측에 통보했다. 차별, 인권침해 등에 대한 진정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인력을 절반 가까이 줄인다면 인권위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 못할 것이라며 지역 단위에서 대책위가 꾸려져 투쟁해가자 지역사무소 폐지는 뺀 채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세 번째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무자격자들을 인권위원으로 앉히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들어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윤희 씨와 김양원 씨는 한나라당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한나라당 추천인 최윤희 씨는 국가인권위원으로 추천받은 후에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을 수락한, 인권위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조차 없었다.

청와대가 임명한 김양원이라는 자는 자신이 시설장으로 있는 시설의 정부보조금을 횡령한 사실로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시설장애인에게 낙태를 종용했던 시설장으로 시설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했던 사람이다. 물론 최악의 인권위원 인사는 바로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임명이다. 그는 어떠한 인권관련 경험도, 전문지식도 없는 인권문외한이다. 교수 출신이라지만 학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며, 그는 인권위를 비민주적으로 운영하며 인권위 업무를 정부의 입맛에 맞게 조절하였다.

사실 2001년 인권위 출범 때부터 인권위원 인선은 임명권자만 있었지 인선과 관련한 절차도, 검증 절차도 없었다. 단지 대통령 3인, 대법원 3인, 국회 4인으로만 되어있을 뿐 최소한의 인권위원 자격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 인권위원 인선절차가 워낙 ‘인권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기에 발생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후 지금까지 인권위원의 인선과정이 공개된 경우는 없다. 대통령 추천은 비서실을 중심으로 이줘졌고 정당 추천도 당 지도부의 인맥이며, 대법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권위원 등 인적 구성원의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권력 눈치보기와 비민주성
현병철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후퇴가 분명했던 사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주었다. MBC PD 수첩 사건, 박원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법원의견표명, 야간시위 헌재 의견표명, 최근에는 민간인 사찰에 대해 모두 부결시켰다. 심지어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법원 의견표명을 뒤로 미루기 위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독단적으로 전원위원회를 폐회시키기도 했다.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를 비민주적으로 운영하였던 배경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결국 11월 1일 문경란-유남영 동반사퇴이후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였지만 그는 “사퇴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위원 자문위원 상담위원 등 61명이 사퇴하고 인권위를 떠났다.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정부는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인권관련 경험이 전무할 뿐 아니라 인권위 독립성을 부정하는 시변 소속의 김영혜 변호사를 임명하였고, 한나라당은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을 일삼는 뉴라이트 출신의 반인권인물인 홍준표를 추천하였다.

현병철 위원장 사퇴운동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후퇴정책과 인권위 흔들기 정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기회에 인권위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환기와 독립성 회복, 정부의 인권무시정책 전환과 인권위원 인선절차 및 검증절차의 제도적 공백을 공론화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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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