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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문화재는 반환될 것인가?

일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 6만 1천 4백여 점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에 대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한국국민의 의사에 반해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분명하게 언급한 점은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문보다 진일보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간 총리는 이어 일본정부가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와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하겠다고 덧붙였다. 수탈한 문화재를 돌려주는 ‘반환’이 아니라 일본이 합법적으로 소장한 문화재를 되돌려주는 ‘인도’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법률적 시비를 피해갔다.

일본정부가 한국에게 식민지지배의 사죄와 함께 문화재를 돌려주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일본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자민당을 대신하여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출범 후 지도부의 정치자금의혹 문제가 불거졌고, 일본경제가 불황인데도 소비세를 5%에서 10%로 인상하겠다는 안을 내놓자 국민들의 지지도는 1년 만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외적으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으며, 중국과도 점차 대립구도로 가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 정권은 동아시아의 한축을 담당하는 한국과 유대를 강화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년 2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의 1차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소장된 우리문화재는 10만 7,857점에 이른다. 그 중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6만 1,409점으로 약 57%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반출되었을 것으로 전문가는 예상한다. 개인이 소장한 문화재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문화재들은 주로 국립박물관, 대학, 사찰 등 250개소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도쿄국립박물관 6,751점, 국회도서관 6,748점, 덴리(天理)대학 5,711점, 오타니(大谷)대학 5,605점, 교토대학 4,750점, 오사카부립도서관 4,746점, 궁내청 4,678점 순이다.

일본에 반출된 문화재 중에는 상당수의 국보급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는데, 덴리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가 그 중 하나이다. 안견이 안평대군에게 꿈에서 봤다는 도원 이야기를 듣고 사흘 만에 그린 그림이다. 조선전기 최대의 걸작으로 손꼽이며, 서예사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안평대군, 김종서,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등 당시 조선 명사들의 글씨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쿠라(小倉) 컬렉션은 일제시대 오쿠라 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한반도에서 수집한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에 몰래 가져갔다가 그의 아들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고고자료 557점, 조각 49점, 금속공예품 128점, 도자기 130점, 목칠공예품 44점, 서적 26점, 염직 25점, 민속품 2점 등, 총 1,030점의 문화재는 거의 국보급에 해당하는 문화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5-6세기 신라 금동투각관모(金銅透刻冠帽)는 매우 특이한 양식으로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또한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수집한 아타카(安宅)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총 793점으로 후에 오사카부립동양도자미술관(大阪府立東洋陶磁美術館)에 기증되었는데, 고려청자를 비롯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국보급 도자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문화재들은 개인이 수집한 것이라 돌려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일본 수상이 담화문에서 돌려주겠다고 언급한 문화재는 주로 궁내청의 문서보관소인 쇼로부(書陵部)에 있는 도서들이다. 여기에는 모두 639종 4,678책의 한국 고서가 소장되어 있다. 이 중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을 포함한 ‘조선총독부 기증’이란 도장이 찍힌 도서가 1차 반환대상이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불법으로 일본에 반출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행한 주요 행사인 혼사, 장례, 잔치 등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긴 기록문서이다. 의궤란 ‘의식’과 ‘궤범(본보기)’을 합한 말이다. 현재 쇼로부에 있는 조선왕실의궤에는 명성황후의 장례 절차가 기록된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는 2007년 6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될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조선왕실의궤 이외에도 쇼로부에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유교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던 곳인 ‘경연(經筵)’의 소장 도장이 찍힌 도서 3종 17책이 있다. 또한 홍문관을 비롯해 규장각을 제외한 다른 도서관의 책을 1909년 한꺼번에 모은 제실도서 38종 375책도 여기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우선 조선총독부를 통해 반출된 조선왕실의궤만 돌려 줄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는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조선왕실의궤뿐만 아니라 쇼루부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도서를 이번 기회에 돌려받아야 한다.

이번 조선왕실의궤를 돌려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혜문스님이다. 그는 2004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도쿄대학에 있다는 것을 알고 환수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도쿄대학이 2006년 7월 서울대학에 기증 형식으로 실록을 반환했다. 혜문스님은 같은 해 10월 의궤도 수탈된 사실을 알고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구성하여 일본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일본 정치인과 외무성을 찾아가 의궤 반환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간 나오토 수상이 담화문에서 문화재를 인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바로 헤문스님의 노력의 대가이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단체는 문화재를 한국에 돌려주겠다는 수상의 담화문 발표에 한목소리로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실제로 반환이 이뤄지기까지는 난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체결된 ‘문화재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문화재 반환은 해결됐다는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1차적으로 반환받을 도서들은 일본 왕실 소유이므로 일본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자민당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당 내에서도 우익성향의 국회의원이 많기 때문에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9월 14일에 열리는 당대표선거에서 만약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당선이 되어 수상이 바뀐다면 보수 우익에 가까운 그의 성향으로 보아 문화재 반환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쳐 한목소리로 문화재 반환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정부의 문화재 반환은 한일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를 다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일본정치인을 비롯한 사회단체와 일본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정부는 문화재청 내에 문화재 반환전담팀을 신설하고 인력과 재정지원을 강화하여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 목록과 내용을 정확하게 재조사해야 한다.

나아가 문화재 반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국과 이집트 등의 반환사례를 연구하여 연차적인 반환계획을 세워 지속적인 반환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단체의 노력이 어우러져 해외에 반출된 많은 문화재가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와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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