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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강정마을이 먹는건가요?

정부와 주민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극심해져


제주도 서귀포시 남쪽에 강정마을이 있다. 제주도를 오가는 관광객이 한해 수백만 명에 이르지만, 강정마을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귀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정마을 서쪽의 중문관광단지를 찾았지만 2007년부터 강정마을이 제주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되면서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강정에선 5년째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3월 7일 해군의 본격적 발파가 시작되면서 논란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3월 7일부터 15일까지 해군은 구럼비 바위 인근에서 항만 기초 구조물 제작을 위한 발파를 수십 차례 진행했다. 구럼비 바위 자체에 대한 폭파는 3월 19일 경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구럼비 폭파로 해군기지 건설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년 전 제주해군기지 논란은 시작되었다. 1992년 해군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항 개발계획에 해군부두 건설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몇 차례 요청을 거쳐 2002년 6월에 화순항 해군부두 건설이 구체화됐다.

하지만 안덕면 주민들의 반대와 화순항 문제 전면 재검토를 주장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해군부두 건설은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됐다. 3년이 지난 2005년 9월, 해군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기초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남원읍 주민들의 반대운동과 서귀포시 정치권의 반발로 위미 해군기지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2007년 4월 12일 김 지사가 5월 내로 기지 건설을 확정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강정마을이 갑자기 해군기지 후보지로 포함됐다.

4월 22일 강정마을 주민총회 공고가 붙었고, 4일 뒤에 열린 총회에서 87명의 참가자(강정마을 성인 인구는 1000여 명)들은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고, 정부는 6월에 이를 승인했다. 5년을 끌어온 문제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주민들은 8월 20일 725명이 참가한 주민투표를 통해 윤태정 당시 강정마을회장(현 해군기지 추진위원장)을 해임하고, 해군기지 반대파였던 강동균 현 강정마을회장을 추대했다. 주민의 반발을 우려한 해군은 9월에 제주해군기지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될 것이라 밝혔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민들의 싸움은 계속됐지만 한 번 결정된 것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이 2009년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을 벌였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오히려 소환투표에서 살아난 김 지사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제주도의회가 2009년 12월 구럼비 바위 일대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기습통과시켰다.

하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부정적이던 우근민 무소속 후보가 제주도지사에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과반수가 야당으로 바뀐 도의회는 2011년 3월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취소의결하기도 했다.

정부와 해군의 해법은 밀어붙이기였다. 지난해 9월 구럼비 바위 일대에 공사 펜스가 설치되고, 주민들의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열린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정부의 입장은 변함없음이 재확인됐고, 본격적인 발파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월 5일 우근민 지사와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 새누리당·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제주 해군기지가 민·군 복합항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공사 진행을 즉각 보류할 것을 요청했다. 제주 정치권은 7일 오전 해군에 다시 한 번 공사 중단 요청을 했지만 해군은 7일 오후, 발파를 강행했다.

● 왜 짓는가?
해군이 지난 20년간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해온 가장 큰 이유는 ‘국가안보’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있어야 한국의 수출입 물량의 95% 이상이 통과하는 제주 남방 해역을 지키기 수월해지고, 타국과의 해상 분쟁에 신속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국방부는 제주도 남쪽에 위치한 수중암초 이어도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목포에서 출발한 함정은 도착하는 데 15시간이 걸리는 반면, 제주해군기지에서는 8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해군기지 건설논리는 지역경제 활성화다. 국방부는 해군기지 유치로 상주 인구가 크게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될 뿐만 아니라, 해군 함정을 관광상품화 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해군기지가 제주도민들에게 매년 200~300억 정도의 추가소득을 유발시킬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미 주민보상이 완료된 것 역시 해군기지 찬성논리 중 하나다. 국방부는 2009~2010년 동안 520여억원의 토지·어업보상비를 해안가 주민들에게 지급한 바 있다. 제주도 정치권이 일시적인 공사 중단을 촉구한 데 대해 국방부는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제주도 발전을 위해 시급한 국책사업이므로 더 이상 정치쟁점화되면 안 된다”(8일 황기철 해군참모차장 기자회견)고 답했다.

● 해군기지는 일방적 추진
반면,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추진이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4일만에 87명이 총회를 열어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추진한 것부터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해군기지 문제로 심각한 내부 갈등이 지속됐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귀포신문의 2009년 9월 조사에 따르면, 강정마을 주민 4명 중 3명이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근민 지사와 민주통합당의 입장은 해군기지 완전 반대보다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에 가깝다. 2007년 국무총리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긍정적 입장이었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해군기지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했지만, 안보적 측면에서의 필요성에는 동감했다.

우 지사가 해군기지 공사 일시중단을 요청한 핵심적 이유는 애초 민군복합항 기본협약서에 나온 ‘15만톤 규모의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이 가능한지 객관적 검증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제주도는 참여하지 못했다. 한편,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투쟁을 이끌어가고 있는 활동가들과 진보세력은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추진과정의 비민주성과 더불어 제주에 해군기지가 없어도 다른 국가보다 이어도에 먼저 도착할 수 있다는 점, 중국과 경계가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제주 남부해역 근처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경우,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점, 소파(SOFA)협정에 따라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반대 논거로 들고 있다.

강정마을의 환경적 가치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평범한 바위’라는 해군의 주장과 달리 구럼비 바위가 제주 해안에서 보기 드문 바위이며, 붉은발말똥게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구럼비 바위 주변 해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점도 해군기지 반대 논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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