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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건을 통해 본 대한민국 -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정부, 언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주권을 가진 국민이 곧 국가라는 인식 시급

저는 이십대 초반의 딸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제가 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이력이 그 두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마가 되면서 진심으로 세상이 중요해지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내 아이만 잘사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엄마가 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 17일에는 경주의 한 리조트 지붕이 새내기 대학생들 머리 위로 무너져내렸습니다. 네 명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충격적인 사고 이후 안전점검만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예견된 인재라는 보도가 쏟아졌고, 대통령과 정부는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하고 시정할 것을 국민들 앞에 약속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고 자기 일이 아닌 사람들이 삶의 무게 속에서 사건을 잊어갈 무렵, 4월 16일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여객선이 침몰했습니다.

72라는 생존가능시간 동안 모두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국가도 정부도 해양수산부도 해양경찰도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까지도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용서하겠다고 살려서 데려오기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분일초도 아까운 생존가능시간 동안 속속 들려오는 언론의 보도들은 차마 억! 소리도 내지 못하게,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어마어마했습니다. 사고 당시 첫 조난 신고는 승객이 했으며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첫 구조선을 타고 탈출했습니다. 그들이 걱정한 단 한가지는 청해진해운에 돌아갈 불이익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정부는 컨트롤타워를 정하지 못했고,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등 기관단체들은 며칠 사이에 열 개가 넘는 구조본부를 만드느라 정작 구조는 엄두도 못냈다고 합니다. 해양과 관련한 모든 일들은 해피아(해양수산부 마피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답니다. 현장 구조 책임자인 해경 국장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유병언 회장의 장학금을 받았고 세모그룹에 7년간 근무한 구원파 신도라고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피아와 같은 폐단을 없애겠다고 단언한 정부와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 법안의 하나로 추진 중인 크루즈산업 육성법안은 선박 업계가 이익단체를 만들어 정부 업무를 위탁하도록 되어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세월호를 명치에 걸치고 눈물과 분노로 하루를 연명하던 중 서울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선박의 노후 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인 것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었다는 것이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이 철도차량의 내구연한을 아예 삭제했다는 뉴스와 만나야 했습니다. 세월호가 대한민국과 함께 가라앉고 서울지하철 2호선이 서울과 함께 충돌하는 동안 경주리조트 참사 이후 모든 안전시스템을 점검하고 국가재난방지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하는 의문과 슬픔과 분노를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재난이라고 말하는 모든 참사가 제대로 된 국가재난방지시스템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과 대한민국의 공무를 담당하는 모든 공무원들은 스스로 사표를 내야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 사람들이 첫 번째로 했어야 하는 일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지금까지 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이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책임지지 않고 책임질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속고 속으면서도 그들을 책임 있는 자리에 세우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벌을 받아야 하고, 주권을 가지고 종노릇을 한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재난방지시스템이나 매뉴얼을 만드는 일은 이제 한시도 미루어서는 안 되는 시급한 일입니다. 또한 오로지 돈의 논리만을 따라가는 브레이크 없는 대한민국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면 백화점과 다리 리조트가 무너지고, 다른 이름의 세월호가 침몰하고, 전국의 지하철은 더 큰 참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엄마가 주요 이력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저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멈추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윤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도덕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기업과 금융들은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이윤을 창출하는데만 전념합니다. 그렇게 가는 동안에는 정치권과 끈끈한 동맹관계를 유지합니다. 법의 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권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기업들을 집어 삼키고 몸집을 불리고 또 불립니다.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본이 더 많은 은행은 규모가 작은 은행들을 흡수합니다. 그렇게 거대 금융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돛을 단 다국적기업과 거대금융들은 전세계 자본주의 시장을 잠식합니다. 동맹관계를 유지하던 정치권은 그들의 사람들로 채웁니다. 언론은 그들이 공급하는 자본을 받으며 스스럼없이 대변인을 자처합니다. 이제 그들을 대적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이 피도 눈물도 도덕도 상식도 버리고 오로지 돈만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해서 만든 신화입니다. 10%도 안 되는 그 사람들이 대부분의 자본을 소유합니다. 모든 것을 잠식한 그들은 가끔 아주 조금씩의 아량을 베풀면서 세상에 없이 선량한 것처럼, 도덕이 지상최대의 가치인양 자신을 포장합니다.

소수인 그들이 다수를 지배하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합니다.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그렇게 살지 못한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도덕도 상식도 피도 눈물도 버립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너는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부모도 형제도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이웃도 꽃도 나무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만 한 아이들은 그들의 회사에 그들의 은행에 입사합니다. 그들이 지급한 월급통장을 입고 그들이 지정한 장소에서 기다립니다.

세월호에 아이를 묻은 어떤 엄마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가 났을 때 그것은 절대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정부와 사회의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울부짖던 어떤 엄마의 목소리가 꿈에서도 들려옵니다. 그래야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온갖 이유로 국민들이 눈 막고 귀 먹어 있는 동안 대한민국은 더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정부와 언론과 어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으로 지방 자치단체장으로 국회의원으로 시의원으로 교육장으로 국민의 손발이 되어 일할 사람들이 10% 속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소수인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판단은 투표로 이어져야 합니다. 90%인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입안하고 그것을 꿋꿋이 실행할 사람들을 뽑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이 가진 주권, 투표권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행정부가, 공무원이 국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이 곧 국가입니다. 절대 다수인 우리가 응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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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