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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의 몰락과 리비아

민주화의 척결 대상이 될지도 모를 위정자들의 각성을 촉구


카다피 압제에서 해방을 선언한 지 일주일 남짓 만인 지난달 31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는 신임 임시총리로 전기공학자 출신인 압델 라힘 알 키브를 선출했다. 신임 키브 총리는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 수립’을 과도 정부의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그간의 수많은 갈등과 국내외의 난관 속에 카다피의 죽음으로 얻은 민주주의의 결실을 “과도기를 맞은 리비아는 여러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과도 정부 구성원 간에 긴밀하게 협력하고, 리비아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무려 43년이나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시민군에게 사살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오랜 시간동안 독재정치를 해온 그였지만, 마지막 몰락의 순간은 굴욕적인 모습이었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중앙부에 위치한 국가로서 본래 국명은 ‘리비아 인민사회주의 아랍공화국’이다. 1911년부터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어 군정통치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리비아 연합 왕국으로 독립했고, 1969년 카다피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공화국의 모습을 갖췄다. 리비아의 큰 특징은 500여개의 크고 작은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때문에 리비아가 겉으로는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춘 듯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족 국가에 가깝다.

500여개의 부족들 중 3대 부족인 카다파, 주와야, 와르팔라가 전체인구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고, 리비아 사태에서 가장 핵심 인물인 카다피는 바로 카다파 부족의 지도자로서 지난 42년간 의회와 헌법조차 무시한 채 철권을 유지해 오는 등 21세기에 18세기형 전제정치를 해 왔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1942년 지중해 연안 도시 시르테 인근 베두인 텐트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9년 육군 대위의 신분으로 젊은 장교들을 모아 ‘자유장교단’을 구성했고, 당시 국왕이었던 이드리스 1세가 신병 치료를 위해 터키에 건너간 사이 벵가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1986년 서베를린 미군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1988년 팬암 항공기 폭파사건을 잇따라 일으키는 등의 각종 테러에 개입하고 반미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행동들로 국제사회에서 악명 높은 인물이다. 1992년 유엔이 제재에 동참하며 원유 수출이 봉쇄당하자 리비아의 경제가 급격히 피폐해졌다. 카다피는 로커비 사건의 피의자인 리비아인 2명을 영국에 인도했고, 유엔은 리비아에 대한 제재를 풀은 바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서방 세계에 본격적으로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 이듬해엔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한 바 있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혼란스러운 나라이다.

리비아 사태는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과 비교되곤 한다.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라는 거대한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SNS를 중심으로 불어 닥친 것이 튀니즈의 민주화 운동인 재스민 혁명이다. 이는 2010년 12월 17일 실직 중이던 26세의 튀니지 청년이 과일과 채소를 거리에서 판매하는 것을 본 경찰이 판매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며 상품과 저울을 몰수하고 손찌검을 하는 등의 인권유린을 당했다. 이에 이 청년이 지방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그 여파로 시위가 점차 확대된 것이 아랍 민주화 혁명의 시작이다.

‘재스민 혁명’ 바람은 중동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로 독재자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고 예멘, 리비아를 거쳐 그 끝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던 차에 압제의 땅 리비아에도 민주화의 열풍에 휩쓸리게 되었다. 민주화의 거센 물결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국민을 억압하고 소통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중동의 반민주 독재 지도자들은 지금 그 최후가 어떤가를 카다피가 죽음을 통해 간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수십 년 동안 모든 권력과 국가 재산을 독점하고, 초호화의 사치 생활을 하면서 국민을 억압했던 카타피의 몰락은 동시에 비로소 리비아에 민주화의 새로운 꽃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국제사회는 리비아 반(反) 정부 세력의 구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 과도국가위는 늦어도 8개월 내에 헌법을 만들어서 의회를 구성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NTC는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20개월 로드맵’에서 새 과도정부 수립 이후 8개월 안에 구성된 제헌 국민의회가 공식 정부를 띄우도록 했다. 이어 공식 정부는 국민 투표로 헌법을 확정한 뒤 선거법을 마련해 2013년 6월 전후에 총선을 치르게 된다. 향후 카다피 축출 후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며, 다민족 국가의 특징이 강한 리비아로서는 내부 혼란이 장기화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내전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시민군에 의한 리비아의 정권 붕괴가 연일 격렬한 시위와 유혈 진압을 반복하고 있는 시리아와 예멘의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을 전망할 수 있다. 서방으로부터 ‘중동의 미친개’라는 유쾌하지 못한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폭력적이며 괴팍했던 카다피의 최후는 민주주의라는 국민적 열망에 반하는 폭압적인 지도자의 말로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대군주 타도를 목표로 진행된 시민혁명은 수많은 시민의 피의 희생을 통해서 법과 원칙의 지배와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오늘의 현대 민주주의를 존재하게 한 근인이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로 대변되는 현대의 정치시스템은 그 과실을 누리지 못한 국가에서는 이처럼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얻어낸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카다피의 최후가 타전된 이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북한 김정일의 다음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 역시 북한 주민들의 3대 족벌세습에 대한 거부감과 분노에 상당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지난 37년간 북한을 통치해 온 김정일 정권은 이번 카다피의 몰락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현재 3대족벌세습 완성을 위한 강성대국 원년을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으며, 빈부격차의 심화, 배급경제와 계획경제의 붕괴로 친시장 의식의 만연,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인한 외부사회의 동경, 아프리카 민주화 영향 등 내외의 수많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정권의 결단으로 남북한과 세계의 불행이 될 수도 있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함으로써 상생·공영의 국제사회로 나오는 길만이 상생의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세계적인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면서 북한의 폐쇄장벽을 허무는 모습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우리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반민주 독재국가들을 중심으로 뒤늦은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이미 민주화 과정을 거치고 이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는 것과 정당정치를 외면하는 최근의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 현대사회에서 정당정치의 소멸은 혼란과 독재의 회귀로 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의의와 정신을 망각한 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만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민주주의라는 정치시스템 전체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에 나오는 위험한 현상들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우리사회 전체에 부여된 시급한 과제임을 자각하고 또 다른 민주화의 척결 대상이 될지도 모를 위정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변화와 쇄신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확대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이 카다피의 몰락을 몰고 온 리비아 사태를 통해서 우리사회의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과 한반도 분단해소에 관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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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