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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대통령의 한계를 보여준 이명박 정부 5년

"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 2월24일 밤 12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2007년 12월 “경제를 살리겠다”며 17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대통령은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CEO 출신 대통령이라는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5년을 평가해 본다.

● 글로벌 리더십 VS 불통의 리더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월19일 고별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의 중심국가가 됐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성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서울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외교적인 성과를 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재진출도 이뤄냈고, 두 번의 실패 끝에 동계 올림픽 평창유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5년 내내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의 리더십을 보였다. 국민과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은 물론 같은 당인 친박계와 소통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기업 리더들과의 만남은 잦았으나, 사회적 소수자나 정책 반대 세력과의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라디오 국정연설 등 일방향 소통으로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인 권위주의 타파를 부활시켰다는 비판도 들었다.

● 강력한 추진력 VS 갈등조정의 부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가 지난 5년 동안 추진한 주요 정책은 심각한 국론분열을 일으켰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는 22조원이 들어가는 4대강사업을 강행했지만,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총체적인 부실’ 판정을 받았다. 수질 악화와 환경 파괴를 가져왔다는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4대강사업이 그의 임기 5년 동안 최대의 과오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도 국민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국력낭비가 극심했다.

이처럼 이 전 대통령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갈등조정에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게 CEO 역할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 끝임 없이 설득하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 실용주의 VS 원칙주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북관계에서 실용 노선보다 원칙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남북관계는 5년 동안 경색됐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햇볕 정책과 대북 지원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는 비판 아래 대북 지원을 최소화하는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폐기 진전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10년 내 북한 주민의 1인당 소득이 3000달러 수준에 이르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비핵·개방·3000’ 정책은 북한이 핵을 생존 전략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빠져 있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용을 앞세웠지만 원칙이 더 중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747(연평균 7% 성장, 소득 4만 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 공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성장주의 정책을 고집하면서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피해는 서민의 몫이었다. 글로벌 위기 이후에도 고환율(원화 약세) 정책 기조를 고수해 고유가 충격으로 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2008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4.7%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였다. 성장위주 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민·지역경제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 CEO의 그릇 VS 대통령의 그릇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월19일 청와대 기자단과의 고별오찬에서 “일을 해보면 우리를 이해하고, 일을 안 해본 사람은 우리를 많이 비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것을 알아주지 못한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드러낸 말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CEO 출신 대통령답게 재임 시절 늘 ‘일하는 대통령’을 강조했다. 하지만 CEO로서의 할 일과,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다른 것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CEO의 일이라면, 협의와 소통으로 반대편도 함께 이끌어 나가는 것은 대통령의 일이다.

그는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강부자’(강남 땅 부자) 인사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그 뒤로도 인사 스타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논란이 많은 인사에 대해서는 “일만 잘하면 된다”며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효율성’에만 치중하는 ‘CEO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충성심이나 인연이 있으면 도덕적 흠결이나 업무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인사를 강행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만 8명이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 보은 인사로 얼룩진 인사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인사였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의 낙마로까지 이어졌다.

현대그룹 출신인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은 “이 대통령은 CEO와 대통령의 업무를 혼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CEO는 목표를 단일화시켜 결과를 위해 조직의 역량을 한쪽으로 쏟아 붓는 게 맞지만, 국가경영은 능률·분배·정의 등 충돌하는 가치를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사 스타일의 문제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도덕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자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친인척과 측근이 비리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도 불러 일으켰고 내곡동 사저 터 의혹으로 대통령 일가가 특검의 수사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비리를 저지른 측근에게 면죄부를 준 정권 말의 특별사면으로 국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대통령의 프레임(틀)으로 이 전 대통령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CEO의 프레임으로 이 전 대통령을 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을 뽑은 것이지, CEO를 선거로 뽑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CEO 출신 대통령은 그렇게 떠났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마지막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남기겠다”고 했다. 후대사가의 평가에 앞서 CEO 출신의 대통령이 다시 나온다면 국민은 그 사람을 뽑아줄까? 선뜻 ‘그러겠다’고 말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세상일이란 모르는 일이다. CEO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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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