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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 현상과 배경

보수정치인 및 언론, 집필기준과 심의절차를 무시한 국가권력의 합작품


지난 8월 30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를 통과했다. 그중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검정심의 이전부터 교과서 집필자들의 성향에 비추어 뉴라이트의 시각이 반영될 우려가 컸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역사단체들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면밀히 분석해 수많은 오류와 왜곡의 실상을 찾아내어 공개했다. 또한 각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검증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검정 과정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다른 7종의 검정 통과 교과서에 비해 2~3배의 오류를 지적당했다. 그것도 다른 교과서는 주로 띄어쓰기나 토씨가 틀린 것을 지적받은데 비해 대부분 연도, 인명, 단체명, 사건명에서 나타난, 상식 이하의 오류였다. 그렇지만 국사편찬위원회는 친절하게 교정 작업을 해주고는 검정을 통과시켰다. 폐기되어야 할 교과서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그렇게 검정을 통과했지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은 여전하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수없이 확인된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네 역사 연구단체가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검토한 결과, 교과서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298개나 발견되었다. 그 후에도 전문가들과 언론에 의해 또 다른 문제점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법을 어겨가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수정기회를 주고, 또다시 생명을 연장해주려 하고 있다.

물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이외의 다른 7종의 교과서에서도 오류가 나타난다. 다른 교과서들은 완벽한데 반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만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는 다른 교과서들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오류의 수준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교과서는 불편부당해야 한다. 아직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과서에는 특정한 이념이나 노선을 위해 다른 쪽의 이념이나 노선을 부당하게 왜곡하고 폄하하는 내용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교과서는 몇몇 소수가 주장하는 이설(異說)을 새로 검증하는 장이 아니다. 오히려 학계에서의 오랜 논쟁 끝에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용어와 내용이 실리는 것이 교과서의 기본 원칙이다.

전체적으로 이 교과서는 집필진의 비전문성이 여실히 드러나며, 뉴라이트와 보수세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특히 근현대사 부분에 오류와 왜곡이 집중되어 있다. 바로 일제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 친일파에 대한 변명,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폭압정치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독재미화론 등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보자. 근대사를 다룬 Ⅴ단원 첫머리, 일제강점기 전체의 내용을 요약한 부분에서 일본이 “동화주의를 채택하였고, 융합주의를 적용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융합’이란 용어는 최근 외국의 일부 학자들이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용어이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고 따라서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을 융합이라 부르는 것이다.

교과서 필자들은 일제강점기를 식민지가 아닌 다민족, 다문화사회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식민지 근대화론 곧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같은 단원 6장 ‘일제강점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에서는 유독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면모를 강조한다. “(1930년대 명동 거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라고 한 뒤 학생들에게 “이러한 명동 거리의 생활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서 이미 식민 통치를 미화하려는 속내가 드러난다. 1930년대 서울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규정해 놓고는 이러한 발전상이 당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냐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다른 7종의 교과서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 중 하나가 친일파에 대한 서술이다. 다른 교과서는 모두 친일파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으며, 서술의 기조도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데 맞춰져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뒤늦게나마 국가 차원의 친일 청산이 일단락 된 상황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유독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만은 친일의 역사를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다.

반면 친일파 및 친일행위를 변명하는 서술 기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일제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굴종과 전쟁에 대한 협력을 요구하였고, 강요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이에 따랐다”라고 하여 일제의 핍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한 것이라는 ‘불가피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하고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각급 학교에서 황국신민화 정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징용이나 징병에 응해야 했다”라는 ‘전(全)민족 공범론’, “일제 시기 고등 교육 기관을 세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제와의 협력도 필요하였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고등 교육을 실시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의 의미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여 이른바 ‘공과론’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며 내세웠던 논리들의 재판이다.

독립운동사 서술에 있어서는 두 가지 서술기조가 드러난다. 하나는 이승만과 외교노선, 실력양성운동을 강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력·의열투쟁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이다. 별도의 장으로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으며, 이승만에 대해 ‘국제 정세 판단의 탁월함’,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 ‘국민적 영웅’과 같은 서술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치 이승만 위인전을 보는 것 같다. 이 교과서대로라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이승만의 활동으로 점철된다. 안중근의거에 대해서는 한 줄도 안 되게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1909)”고 간략한 사실만 소개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반면 외교론과 실력양성론을 비판했던 신채호에 대해서는 「조선혁명선언」을 제시한 뒤, “신채호가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을 비판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있다. ‘과연’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신채호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결국 민중의 직접 행동에 의해 독립을 이루자는 신채호의 독립 운동 방략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거꾸로 신채호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된 외교론과 실력양성론만이 독립 운동의 유일하고도 옳은 방략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교과서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불량품이다. 그런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문제작이 아니다. 그 뿌리는 꽤 깊다.

2008년 3월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은 ‘식민지근대화론’과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쓴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출간했다. ‘교과서포럼’은 2002년부터 있어왔던 역사교과서 ‘좌편향’ 논란에 호응해 2005년 1월 창립한 단체이다. 이 책 필자들은 ‘대한민국 발전사’를 기본축으로 삼고, ‘실패한 국가=북한’과 대비시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20세기 세계사의 모범국가=성공국가=대한민국’이라는 결과론적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재구성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공의 역사’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정통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국민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동시에 정권과 여당, 뉴라이트 등 보수세력은 ‘새로운 역사바로세우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뉴라이트 세력은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근대화의 혁명가’ 박정희로 이어지는 친일·독재세력의 계보를 대한민국의 정통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특별히 기념하자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8월 15일 대대적인 건국절 행사를 추진했다. 친일·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보수세력이 ‘건국절’ 제정에 나선 것은 자신들의 취약한 정통성을 역사적으로 공식화시키는 의미였다.

2011년 5월 뉴라이트를 포함한 보수세력은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교과부에 ‘대안교과서’ 내용을 토대로 ‘역사교육과정 수정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역사교과서 편찬과정에 개입하려 시도했다. 그 결과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를 상당수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집필자인 권희영과 이명희 교수는 바로 한국현대사학회의 전·현직 회장이다.

이제 한국사회가 이룩한 민주화를 바탕으로 축적해 온 역사정의는 교과서를 통해 공공의 기억으로 역사화 할 단계에서 오히려 유실될 위기에 처했다. 과거청산과 역사정의 실현의 성과가 미처 교과서에 반영되기도 전에 근현대사 교과서는 ‘좌편향’이라는 이념논쟁에 휘말렸고, 보수세력의 집요한 공세에 교과서 집필기준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우경화를 주도했던 학자들이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가 드디어 검정을 통과했다. 지난 5년간 파상공세를 펼쳤던 보수세력의 역사왜곡은 결국 특정 지배세력의 정통성·정당성을 강화하는 ‘국사교과서’를 탄생시켰다. 이 교과서는 단순히 집필자의 저작물이 아니라, 이론을 제공한 뉴라이트 학자, ‘좌편향’ 논란을 선동한 보수정치인, 역사망언을 여과 없이 무한 반복한 보수언론, 집필기준과 심의절차까지 무시하는 국가권력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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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