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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유전병 가능성, 미리 아는 것이 과연 옳을까?

유전보호에 대한 개인의 비밀은 보호되야


"신경계 질병 가능성 60%, 우울증 가능성 42%, 집중력 장애 가능성 89%, 심장질환 가능성 99%, 조기사망 가능, 예상수명 30.2세…." 빈센트는 태어나자마자 유전자검사를 받고 이런 낙인이 찍힌다. 어린이집에선 사고 위험이 크다며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지만 가족조차 비웃을 뿐이다.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은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고, 번듯한 직장에서는 그를 거부한다. 이것은 1997년 영화 '가타카'가 그려낸 유전자계급사회의 모습이다. 단순히 공상과학영화로 분류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빠르게 바뀌어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멘델의 유전법칙의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여 21세기초 유전자지도가 완성되고 유전체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어디까지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유전자검사란 염색체에 들어있는 유전자에 대한 검사로서 친자감별이나 범인색출에 이용되고, 암, 치매, 유전병, 염색체 이상 관련 검사들이다. 태아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기형이나 발달 장애, 지능 저하, 조기사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실시하는 산전 유전자검사는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를 검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근이영양증을 비롯한 139종의 유전병에 한하여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대표적으로 시투룰린혈증은 유전적으로 특정 효소가 결핍돼 암모니아를 간에서 요소로 합성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수유곤란과 기면, 구토, 보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급성으로 진행돼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점점 약해져 20세 이전에 사망하는 유전병이다. 하지만 산전 유전자검사를 통해 유전자이상을 알게 됐더라도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는 대부분의 경우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산전 유전자검사가 낙태의 명분을 제공한다. 유전자검사 결과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유전질환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아예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낙태를 한다.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손가락, 발가락이 열개씩 정상적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태어날 아기가 신체 건강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한결 같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태어날 아이의 정상여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유전자검사이다. 열성유전의 경우 우성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정상이고 (AA), 우성/열성 유전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겉으로는 정상이지만 (Aa), 유전형으로는 열성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열성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유전병이 나타난다 (aa). 따라서 부모가 모두 겉으로는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 Aa의 형태로 열성 유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다면, 아이에서 유전병의 확률은 25%이다.

만약, 부부가 유전자검사를 통해 아기가 유전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부부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바로 불임클리닉에서 시행되는 착상전유전진단 (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이다. 착상전유전진단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 수정된 배아가 8세포기에 도달하게 되면 하나의 배아를 추출하여 유전자검사를 실시해 건강한 유전형질을 지닌 배아를 골라서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부부는 유전병이 아기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이 기술로 혈우병, 근육퇴행증, 다운증후군과 같은 유전병뿐 아니라 배아가 관절염, 비만, 직장암,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할 수 있다.

한 예로 영국 런던 가이스 앤드 성토머스 병원에서는 부모의 선천성 질병을 물려받지 않도록 유전자검사를 거쳐 선별한 배아를 착상시킨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 아기들의 부모는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데, 이전에 낳은 딸이 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이미 발병한 상태였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만 불운이 반복될까 고민하던 부부는 착상전유전진단을 선택하였다.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가 알려졌기 때문에 배아를 검사하여 해당 유전자가 온전한 배아를 착상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착상전유전진단의 정확도에 대해 의구심이 많다. 얼마나 정확하게 유전병의 발병 여부를 판단할지 검증되지 않았다. 그리고 4000여 유전병 중에서 얼마나 많은 유전병을 진단할 수 있는가이다. 이미 상품으로 개발한 회사는 100여개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라고 하더라도,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유전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심각하지 않고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착상전유전진단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이다. 또한 비용 부담에 대한 문제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진단의 경우 한 번에 고가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래서 부유층만 접근이 가능하여,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계급 차별을 촉진시킬 수 있다. 또 배아단계에서 세포를 추출하는 행위가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중요한 논란은 맞춤 아기 (designer baby)에 관한 것이다. 맞춤 아기는 인공수정으로 배아를 만들고 유전검사에 의해 특정 유전형질을 지닌 배아를 골라서 태어나게 한 아기를 말한다. 이러한 맞춤 아기는 인류의 질서에 어긋나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 나치가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시도하였던 우생학의 악몽을 재현시킬 수 있다.

우생학은 나치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20세기초 미국에서 영국,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터키인, 유태인, 아시아인, 흑인과 혼합되는 것을 싫어하여, 다른 집단의 성장을 억제하였다. 그래서 강제불임이 실시되고 이민이 제한되었다. 1907년 인디애나주에서 정신지체자와 범죄를 저지른 정신이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불임법이 최초로 통과된 후 30개주에서 실시되었다. 이 결과 1941년까지 36,000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정신박약, 또는 생활보호대상 가족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강제불임을 당하였다. 또, 1924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미국은 미국인들에 의해 지켜져야만 한다. 생물학적 법칙은 북유럽인들이 다른 인종들과 섞일 때 열등해진다”라고 주장하며 이민을 제한하였다.

이렇듯 20세기초에 유전자가 악용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 유전자검사에 의해 비밀누출과 차별화 등 윤리문제를 유발되고 있다. 그래서 유전자검사의 결과를 알고 행동을 취함에 있어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태어날 아이의 유전문제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 또는 가족이 모여서 신중한 상의하여 윤리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유전자검사 결과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유전정보에 대한 개인의 비밀은 보호되어야 하며, 충분한 이해와 자유의사에 의한 동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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