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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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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태진아 씨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 있다. 이 곡의 제목이야말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실 사랑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프롬은 이런 이해를 비판한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므로 사랑도 배우고 익혀야 올바르게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그토록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그 원인이라고 프롬은 본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사랑에 대한 통념으로 프롬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능력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따름이다. 둘, 사랑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보지 않고 ‘대상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능력의 부족에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사랑하는 대상만 찾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셋,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인 상태 혹은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외로움의 표현에 불과할 수 있는 한순간의 격렬한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프롬이 사랑의 통념을 극복하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를 강조하는 것은 사랑만이 인간의 원초적 분리감과 불안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리감과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 술, 마약, 집단과의 합일, 창조적 활동 등을 통해 합일감을 시도하나 그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프롬은 참다운 사랑만이 우리를 분리감이라는 감옥에서 해방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사랑을 주는 것이 더 큰 것을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프롬은 본다.
일상적으로 받는 것은 얻는 것이며, 주는 것은 잃는 것이자 심지어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프롬은 사랑을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생산적 활동이며,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받는 존재로 만든다고 본다.
다시 말해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을 완성해 나갈 수 있으며, 진정으로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사랑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프롬은 우리를 더 나은 인격적 존재로 완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격적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을 쫓는다고 볼 수 있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눈뜨고,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참 계명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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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수결주의·합리주의 정치모델과 국가행복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행이라고 볼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의 징후가 많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정체성이 없는 정당정치 등은 한국 정치의 낮은 제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토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역할이 실종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기 위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 정치모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뜻이 지배하는 정치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는 다수를 점한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며, 일사분란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주의는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 다수결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다. 다수결주의가 작동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합의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원리라는 면에서는 다수결주의와 다를 바 없으나, 다수에 의한 지배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