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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공상 또는 생각하는 즐거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성찰>


화사한 봄이 시작되었다. 교정에는 신입생들이 뿜어내는 인생의 봄 향기로 그윽하다. 봄 향기는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여러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기억들은 인생의 내밀한 파편이지만, 영원한 즐거움을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 같다. 오늘 나는 이 글에서 독자들에게 20년전 내가 경험했던 즐거움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그 즐거움은 어떤 책에 대한 기억이다.

대학에 들어온 첫 학기의 찬란한 봄 햇살 아래서 나는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대답하는 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공상 또는 생각하기의 즐거움은 지독하게 재미있었다. 가끔은 이게 너무 재미가 있어서 수업을 빼먹고 도서관에서 질문의 힌트를 찾는 놀이를 하곤 했다. 첫 학기의 대부분의 수업은 소위 개념정의를 가지고 시작했고 학생들에게 그 개념을 암기하라는 묵시적인 요구들이 있었다. 그런 식의 수업들은 공상 또는 생각하는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언제나 재미가 없었다. 공상하기 또는 생각하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즐거움이며,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20년전 나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아주 충실한 학생이었고, 교양수업에서 소개된 인간에 대한 개념정의 대신에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공상 또는 생각하기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이 때 만난 책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성찰>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성찰’은 철학의 고전으로 소개되는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이는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앞으로 나갈 출입구의 열쇠를 찾다가 우연히 숨어 있는 보너스 게임을 발견한 격이다. 책 속에는 신(神)도 나오고, 고민하는 인간도 나오며, 그러한 인간을 농락(?)하는 전지전능한 악마도 나오니 웬만한 판타지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은 데카르트가 내린 엔딩(책의 결론)이다. 사실 이 책은 아주 다양한 엔딩이 숨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엔딩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이 엔딩을 얻는 경로는 마치 컴퓨터 게임이 그러하듯이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으며, 이 엔딩에 도달한 유저도 현재 엔딩이 최종결론인지 속편이 숨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더욱이 한 유저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엔딩에 도달하였다 할지라도 그가 엔딩까지 제대로 온 것인지, 놓친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결코 끝나지 않는 판타지이며 그래서 더 재미있다.

책을 읽는 것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책 읽기에 앞서 공상 또는 생각하기 놀이를 먼저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상 또는 생각하기 놀이를 위해서 책은 가장 유용한 도구이며, 도서관이나 서점은 최고의 놀이터이다. 책을 통하여 나와 유사한 공상 또는 생각하기 놀이를 먼저 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이번 봄에 많은 학생이 공상하기를 누구보다 즐겼던 데카르트를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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