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는 아름다운 캠퍼스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대학의 낭만과 꿈을 키워나갔다. 우리학교가 캠퍼스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미는 이유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증은 초대 총장인 안두화의 말에서 풀 수 있다. 안두화는 “대학은 나의 밖에 있는 자연이나 그 속에 있는 생명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도덕정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정신에 입각해 우리학교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캠퍼스를 구성하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이 캠퍼스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조경을 가꾸었다. 우리학교의 나무와 식물들이 어떤 유래를 지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엮은이 말 -
우리학교 교목인 은행나무에 대해 알아 보자. 은행나무는 종자식물 가운데서 가장 먼저 지구상에 출현한 식물이자 가장 오래된 식물이다. 은행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종이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은행나무는 수억 년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유지해왔기에 강인한 정신력을 의미한다.
은행나무는 중국 절강성 천목산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건너왔을 것이라 추측되며,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 유럽, 미국 등으로 전해졌다. 이는 나무 한 종류가 전 세계에 분포함을 의미하며, 우리학교가 ‘지역과 세계를 향해 빛을 여는 교육중심 대학’이라는 비전에 부합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편, 괴테는 은행나뭇잎의 가운데가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고 동서양의 조화로운 결합이 보인다 말했고, 더 나아가 모든 대립적인 가치와 양상들을 생동적이며 평화롭게 통합한다는 상징으로 칭송했다. 또한 중국의 곽말약은 은행나무를 동방(東方)의 성자(聖者)라고 불렀다. 강한 생명력과 유일성과 유구성, 고귀함과 성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은행나무는 학문의 전당인 우리학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태도 등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지표를 제공하기에 교목으로 삼았다. 은행나무는 ‘장수, 정숙, 장엄’을 의미한다. 현재 캠퍼스에는 약 5백여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으며, 대명캠 본관 화단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1백살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학교는 이팝나무 꽃을 창립 115주년을 기념해 교화로 지정했다. 이팝나무 꽃은 하얗기에 정결함을 내포하고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를 상징한다. 이에 우리학교는 설립이념을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선교의 뜻에 부합하다 여겨 교화로 지정했다.
이팝나무 꽃은 예로부터 쌀농사의 흉·풍년을 예측하는 식물로 알려져 왔다. 조상들은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팝나무 앞에서 기원을 드렸는데, 이는 이팝나무 꽃이 그 해 농사를 점지해준다는 민간신앙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그해 농사는 풍년, 듬성듬성 나면 가뭄,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팝나무는 꽃 피는 시기가 입하(立夏) 무렵으로 ‘입하’에서 ‘이팝’이 되었으며, 꽃향기가 진해 멀리까지 퍼지고 꽃모양이 풍성하고 많기 때문에 관상화로 인기가 있다. 우리학교에는 성서캠 본관을 향하는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는 약 1995년 본관 신축공사 때 심은 약 1백살 정도의 이팝나무를 포함해 약 40그루의 이팝나무가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팝나무를 심어 계명의 정신을 알리고자 한다.
동산의료원 교정 안 의료박물관 근처에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사과나무의 역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한다. 19세기 말 안의와와 장인차 등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의사와 선교사들은 대구에 방문해 제중원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은 제중원이 전도 집회를 갖고 운영하기에 좁다는 것을 깨닫고 현재 동산병원 자리에 새 건물을 지었다. 벽돌 2층 양옥집을 짓고 정원에 갖가지 꽃과 아름다운 초목을 심었다.
이 시기 안의와 선교사는 중국 산동성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미국산 과일나무를 보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과나무를 수입했다. 장인차 선교사가 미국 미주리주 사과묘목을 수입해서 심었지만 잘 자라지 않았고, 안의와 선교사는 캔자스주 사과나무 묘목을 토종 능금나무 줄기에 접어 붙여 자라게 하는데 성공했다. 묘목은 심은 지 5년 만에 첫 열매를 맺었고, 선교사들은 이웃들에게 수확한 사과와 사과나무의 묘목을 분배했다. 이렇게 해서 대구에 처음으로 사과가 전파되었고, 후에 대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대명동 동산관 앞에는 모과나무 고목 한 그루가 있다. 이 모과나무는 황폐한 땅에서 이백년 넘도록 살았지만, 극심한 영양분 결핍과 각종 병충해로 시들어가던 것을 당시 음악대학에 재직했던 우종억 교수가 구입해 응급조치를 한 뒤 학교에 기증했다. 모과나무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종억 교수와 학교 교직원들이 조치를 취해 되살려놓았다. 이 과정에서 고목의 등치 대부분은 썩어서 제거되었고, 텅 빈 등치 내부를 부분적으로 감싼 껍질로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성서캠의 모과나무는 봄에 초록 잎을 돋아내 연분홍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노란 모과를 맺어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아담스채플을 지나 학군단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이는 우리학교가 성서로 이전해 오던 초창기에 지금의 계명아트센터의 위치에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는 것을 교직원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흔히 억새라 생각하면 우리는 연약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억새는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며, 가장 밑에서 살아가지만 힘든 일에 굴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한다. 사람들은 보잘 것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억새는 자신의 위치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억새를 통해 우리는 낮은 위치에서도 세파에 굴복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정신을 깨달을 수 있다.
흔히 우리학교의 건물 이미지를 상상하면 붉은 벽돌에 담쟁이덩굴, 하얀 현관 기둥을 떠올리곤 한다. 이러한 건물의 역사는 1959년부터 시작된다. 우리학교 건축을 담당한 추성엽 장로가 안두화 선교사를 만났다. 안두화 선교사는 단풍나무와 붉은 벽돌의 건물이 아름답게 어울리는 모교의 전경이 담긴 엽서 한 장을 추성엽 장로에게 전하며 “계명대학교도 이처럼 붉은 벽돌의 건물과 수목이 어우러진 캠퍼스가 되어야 하며, 이보다 훨씬 더 훌륭한 동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시작한 우리학교만의 특징인 붉은 벽돌, 흰색 기둥, 담쟁이덩굴의 양식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붉은 색과 흰색은 계명의 열정과 순수함을 말하며 창조와 평화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다.
이렇듯 계명의 나무와 식물에는 우리학교의 역사와 정신이 담겨있다. 이런 계명의 의지를 이어받아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