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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생, 후학 양성 힘쓰고 있는 김상표 의과대학장

“온실 속 화초보다는 긍정적인 잡초가 되었으면 한다”


●개교 60주년 기념 동문 특집·비사人- 4

<김상표 동문 약력>
1979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1985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6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병리과 전공의
1989년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법의군의관
1997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1998년 미국 듀크대학교 병리학 연수
2007년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병리학 연수
2009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기획정보처장
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현 대한병리학회 평의원 및 고시위원
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장


우리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생이자 지금도 모교에서 의학도 양성에 힘쓰며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상표(의학·79학번) 의과대학장을 만나 의학도의 삶과 모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들었다.

● 의과대학 1회 입학생
김상표 동문의 첫인상은 겸손함이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동문이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 부끄럽다”는 말을 인사대신 건네 받았다. 대구 토박이인 그가 1979년 우리학교에 제1회 의대생으로 입학했을 당시 대구권에는 우리학교를 비롯해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에만 의과대학이 있었다. ‘지역 의과대학 중에서는, 우리학교가 오랜 역사를 지닌 동산병원과을 병합한 때이고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이 계셔서 지원하게 되었다’고 김동문은 지원 당시를 설명했다.

당시의 훌륭한 교수들 중에서는 고 정재홍 병리학 교수를 떠올렸다. 고 정재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병리학의 권위자이며, 성품은 강직했지만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었다고 한다. “교수님을 보며 병리학을 선택했고. 고 정재홍 교수님을 롤 모델로 삼고 의학에 좀 더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에 길은 멀고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지만 동기 5명과 스터디그룹을 함께 할 때는 힘든줄도 몰랐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모여 같이 야식도 먹고 또 즐거움을 나누면서도 각자 맡은 부분에 동기들이 열심히 해줘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과거를 추억 했다. “지금은 타 지역에 살면서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못 보지만 1년에 꼭 한 번씩은 만나 옛 추억으로 이야기 꽃을 피워요.”

1981년 지금 있는 동산캠퍼스 의과대학이 준공되어 대명캠퍼스에서 동산캠퍼스로 이전했다. 동산캠퍼스 의과대학 건물에서 생활한지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새로 지어진 건물로 이전 할 때 모든 의과대학 학생들이 축제 분위기였다. 지금도 동산캠퍼스를 출근하면서, 퇴근하면서 둘러 볼 때마다 그 당시를 떠올린다.

1985년에 우리학교 의과대학 첫 졸업생 을 배출하며, 의료국가고시에 34명 중 33명이 합격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현재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1985년 전국 1등한 기록이 남아 있을 거예요”라며 “훌륭한 교수님들께서 잘 지도해주신 덕분에 이룬 쾌거였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 진정한 의사, 교수자로서 역할
1986년도에 동산병원에서 병리학 전공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병원에서 직접 보는 환자들에게 질병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부분에서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이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겉모습만 의사처럼 보였고 속 내면은 아직 부족했죠”라며 환자들에게 좀 더 쉽게 질병을 설명할 수 있는 의사가 되면서 동시에 내면이 따뜻한 의사가 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시절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전공의를 마친 후 1992년 우리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교수로 임용된 후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후학양성에 매우 소홀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교수자로서 역할이 중요함을 느껴 후학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교수로서 가장 큰 보람은 매년 졸업식에서 학위수여를 받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졸업 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이에요. ”

● 긍정적인 잡초가 되었으면
“모교 교수로서 개교 60주년에 큰 자부심을 가지며, 앞으로 계명이 세상에 빛을 여는 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축하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메디시티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 최대 의료시설로 내년에 완공될 동산의료원은 “동산의료원, 의과대학, 간호대학, 약학대학등이 모여 큰 시너지 효과를 통해 학교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밝히며 “지역사회의 의료 질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듯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김상표 동문의 앞으로 계획은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의 초심을 잊지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의사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끝으로 모교 후배들에게 “온실에 있는 화초보다는 긍정적인 잡초가 되었으면 한다”, “잡초의 생명력을 생각하고 모든 일에 포기하기 보다는 견디고 이겨내는 자세를 가지고 먼 미래를 보며 살아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사회에 약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의사를 지원한 김상표 동문은 지금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환자와 후학들 양성에 힘쓰고 있는 김상표 동문이 이 시대에 진정한 ‘진리, 정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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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